내 안팎의 적(敵)은 강고하지만
내 안팎의 적(敵)은 강고하지만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1.2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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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칼럼
허건행 <전교조충북지부 부지부장>
글 두 편을 소개합니다.

먼저, 오래전 전교조 교육활동의 총화인 참교육실천대회에서 접한 짤막한 글입니다. 교사로서 조악한 교육현실과 마주칠 때 길을 안내하는 등대로 여기며 되씹어 읽어보곤 합니다.

인디언 보호구역의 한 초등학교에 백인 선생님이 부임했습니다. 수업을 마친 후 선생님은 시험을 보겠다고 했습니다.

서로 보지 못하도록 아이들을 떨어뜨려 앉힌 다음 시험지를 나눠주었습니다. 조금 지나자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 책상을 서로 붙여서, 둘러앉았습니다.

백인 선생님은 화가 잔뜩 나서 "시험시간에 이게 무슨 짓이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습니다.

"저희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한테 말씀듣기를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을 많이 겪게 될 텐데 그럴 때마다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언제나 여럿이 지혜를 모아 해결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려운 문제라면 모두 힘을 합해 함께 푸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글 토막입니다. 파블로 네루다와 관련된 일화입니다.

1971년 파블로 네루다는 노벨 문학상을 받습니다. 2년 뒤, 피노체트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며칠 뒤 네루다는 쿠데타를 비판하는 글을 구술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무장한 군인들이 네루다의 집에 들이닥쳤습니다. 부인이 받아 적던 것을 급히 감추자마자 장교가 집 안을 수색하겠다고 통고했습니다. 네루다가 장교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당신들에게 위험한 것이라고는 이 방에 단 하나밖에 없네." 장교는 깜짝 놀라며 권총에 손을 댔습니다. "그게 뭡니까" "시(詩)라네."

인용한 두 토막의 글에서 살림의 씨앗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교육철학과 원리를 건져 올립니다. 단순하지만 명쾌합니다.

공동체 가치와 감성과 영성의 회복입니다. 올곧은 저항과 비판의 힘입니다. 어떤 교육정책도 이러한 기본적인 밑돌을 괴지 않고는 사이비가 됩니다.

교육이 다수에 상처를 줄 수 있는 무기가 되어 버립니다. 교육에서 공동체적 가치, 감성과 영성의 실종, 저항과 비판능력의 고갈은 민주주의의 종언과 같은 말입니다.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무한경쟁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주술처럼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배제와 차별로 사회가 멍들고 있습니다.

살림의 가치들이 오욕의 똥물을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교육현장에서 권력에 빌붙은 교육마름들이 득세하고 참된 교사들이 요절나고 있습니다.

행태가 광기의 수준입니다. 교육이 평가와 경쟁의 늪에 빠져 '타자의 아픈 소리'를 '나의 쾌락'으로 여기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무한경쟁교육의 과정속의 현상이며 점차로 나타날 필연적 결과입니다.

자유를 참칭한 신자유주의는 소위 상위 10% 사회기득권층이 의기투합해 자신들의 계급을 공고히 하고 자신들의 계급이익을 사수하는 시스템입니다.

지금 우리사회에 던져진 수많은 정책들의 뿌리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것들은 바로 신자유주의자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공동체성, 공공성을 거세하는 정책들입니다.

교육에 있어서 고교다양화, 학교자율화, 일제고사, 교원평가, 미래형교육과정. 성적공개 등등 나열하기도 힘듭니다.

이런 정책들의 특성은 영성과 감성을 거세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뿌리째 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지'라는 현실론의 그물망에 걸려 오늘의 행동과 실천을 실기해서는 안 됩니다.

역설적으로 지금의 현실이 진정 어떤 현실인지 바로 아는 혜안이 필요합니다. 지금 현재 교육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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