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1.20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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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칼럼
최종돌 <전교조 충북지부 대의원>
위기는 의식으로부터 온다. 상황의 위기는 하늘의 재앙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제보다 못한 오늘을 위기로 생각한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만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끊임없는 'up-grade'를 요구한다.

그리고 사방이 벽으로 꽉 막힌 방에 수많은 학생들을 가두어 놓고 '시험'을 통해 몇 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협박하고 있다.

협박의 끝에 몇몇은 죽음을 맞기도 한다. 그 '가두리' 외부엔 사회라는 무서운 눈들이 더 거센 '경쟁'으로 어린 학생들을 억압하고 있지만, 정작 그들을 보호하고 지키려는 아니 하다못해 함께 고민하고 아파할 줄 아는 어른은 몇 안 되는 것 같다.

오히려 가두리 안에서 더 채찍을 가하는 존재가 교사인 것 같아 이 겨울 씁쓸함이 가득하다.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이 너무나 고맙다. 이름표를 왜 안 다느냐? 머리가 왜 이렇게 기냐? 왜 지각을 하느냐? 왜 성적이 이 모양이냐고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학급에 모두가 잘 적응하였다. 무엇보다 수업시간에 밝은 게 좋았다.

청소시간에 혹 내가 없더라도 알아서들 제 역할들을 척척 해낸다. 2주에 한 번 있는 학급회의에는 바쁘다.

자신들이 안건을 내고 회의하고 안건이 없으면 자리 바꾸는 일, 청소 당번 재배정, 소풍장소 정하기, 학급 하이킹 등 늘 시간이 부족하다.

끊임없이 이름을, 별명을 불러주려 해도 어쩜 하루에 눈 한 번 마주치지 못하고 집으로 보내는 녀석마저 있을지도 모르지만,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아이들과 제대로 상담도 다 못했지만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쑥쑥 자라는 콩나물처럼 참 예쁘게 올 1년을 보낸 것 같다.

돌이켜보니 40명이 많다고 불평하기 전에 늘 내가 부족했다. 오히려 이 아이들이 나를 먹여 살려주고 있는 것 같아 창피했다.

아이들에겐 없는 벽을 우리 어른들이 만들고 있었다. 설령 이 사회가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아이들과 늘 부대끼는 우리 교사들은 벽을 허무는 일에 발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인권문제','평가문제'가 그러하다. 인권과 '지도'를 결부시키는 말은 안일하다. 교원평가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평가도 이제 그만 하라고 외쳐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교사가 먼저 평가를 거부하면서 거부의 정당성을 피력해야 한다. 그리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작은 학교'가 대안이다. 작은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는 유기적이며 진정한 주체가 될 수 있다.

상호 소통이 원만해진다. 왜 배우는가에서부터 왜 가르쳐야 하는가, 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가까지! 성적향상 교육이 아닌 성장교육이, 진학에 대한 고민이 아닌 진로에 대한 희망교육이, 공동체에 대한 바른 이해와 성숙 속에서 협동학습을 제대로 구현해 낼 수 있으며, 문화교육이 가능해 진다.

문화 교육은 창의력을 발달시키며 상상력과 열정을 일깨운다. 우리나라는 실현 가능한 국가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돈보다 의식이다.

김구 선생은 그 당시에 이미 국가적 경제력은 충분하다고 하시면서 문화국을 건설해야 강국이 된다고 역설하셨다.

'바깥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향기를 깊고 은은하게 성숙시켜갈 수 있는 사람이 군자이며 그가 교사'라고 말한 공자의 교사관은 지금의 교사들이 특히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벽이 올바른 벽인지의 판단이 중요하다. 어차피 놓여진 벽이라는 말은 말자. 잘못 놓여져 있는 벽이라면 그 벽을 깨부수는 데에 교사들은 의연함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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