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란만 낳을 '자족도시'
지방분란만 낳을 '자족도시'
  • 권혁두 기자
  • 승인 2009.11.17 2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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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혁두 부국장 <영동·보은·옥천>
기업 유치는 일선 지자체들이 추구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도시는 물론이고 입지여건이 떨어지는 농산어촌 지자체들까지도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까지 투자해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에 나서고 있다. 인구 증가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농촌도시인 충북 남부 3군도 마찬가지다. 영동군은 경부고속도로 영동IC 인근에 99만8107㎡ 규모의 영동산단을 조성 중이다. 2010년까지 1069억원이 투입된다. 보은군도 74만1725㎡ 규모의 동부산업단지 조성에 착수했다. 2011년까지 960억원이 투자된다. 옥천군도 2011년까지 469억원을 들여 청산면 인정리에 35만1315㎡ 규모의 청산산업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준공 후 분양계획들은 세워놓고 있지만 아직까지 입주를 약속한 기업은 없다. 일단 공단을 준공해 입주 여건을 갖춘 다음에 공장을 유치하겠다는 전략이다. 입지여건이 비슷한 3개 지자체는 역시 비슷한 시기에 준공되는 각자의 공단에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혈전을 벌여야 할 처지다. 전망은 불투명하다. 엄청난 예산을 들여 조성한 단지가 장기간 빈 땅으로 방치되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세종시가 '행정중심도시'에서 '기업중심도시'로 변질될 조짐을 보이면서 저마다 기업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지방에 대분란이 예고되고 있다. 세종시가 중앙정부 주도의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앞세워 이전 기업을 쓸어갈 경우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세종시가 새로운 기업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기정된 수요를 잠식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우려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지방에서 추진중인 기업·혁신도시로 갈 기업들이 세종시로 방향을 틀어버릴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세종시 인근 지자체들은 벌써부터 들썩거리고 있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기업도시로 전환하는 세종시가 대구·경북 첨단복합단지와 중복되는 기능을 포함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만명 규모의 기업형 신도시를 추진중인 천안시도 대책 마련에 나섰고, 새만금·군산 경제자유구역내에 분당 신도시 규모의 산업단지를 개발중인 전북도도 피해를 걱정하며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중부신도시(혁신도시)와 충주기업도시를 추진중인 충북도 역시 대책 마련에 고심이다.

이들 세종시 인근 지자체들의 걱정이 현실로 드러날 경우 세종시를 둘러싼 수도권과 지방의 갈등은 지방간 갈등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수도권 과밀해소와 지방 균형발전을 취지로 추진한 정책이 거꾸로 지방의 분란을 초래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이같은 갈등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 깊어질 경우 세종시는 다시 한 번 변신을 당해야 하는 기구한 운명을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군소 지자체들이 조성중인 산업단지들의 운명이다. 기업들의 세종시행(行)이 본격화할 경우 파급될 연쇄적인 영향을 가장 하부에서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알짜배기는 세종시로 가고 지방 대도시를 기반으로 추진중인 기업도시나 혁신도시, 신도시 등에는 당초 기대에는 못 미칠 차상위 기업들이 둥지를 틀게 될 것이다. 이런 연쇄적인 현상이 농산촌 지자체들이 빠듯한 재원을 털어 조성중인 산업단지에까지 파급되면 결과는 뻔하다. 예산만 잡아먹은 텅 빈 공단들이 양산되는 것이다.

지방의 또 다른 혈로들을 막아가며 꾀하는 세종시의 자족은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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