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간 카니발니즘 '이상징후'
부자연스러운 섭식관계 빈번… 생태계 건강상태 반영
먹고 먹히는 세계가 있다. 생태계의 먹이사슬 현장이다. 포식자가 피식자를 잡아먹는 현장, 어찌 보면 끔직해 보이면서도 그것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는 세계가 곧 야생이다.
먹이사슬 또는 먹이그물은 생태계 내의 종(種)간 먹고 먹히는 관계를 말한다. 유기체들은 그들이 섭취하는 유기체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그런 과정이 없으면 이 세상 동물들은 살아갈 수가 없다. 그만큼 먹이사슬은 생태계를 유지해 나가는 근간이다.
먹이사슬은 또 생태계의 건강도를 읽을 수 있는 바로미터다. 먹이사슬 관계가 순탄한 곳은 생태계가 살아있다는 증거요 그렇지 못한 곳은 생태계에 이상이 있다는 징후다.
일반적으로 곤충은 개구리에게 잡아먹히고 개구리는 뱀에게, 뱀은 부엉이 등 상위 포식자에게 잡아먹힌다. 그게 일반적인 먹이사슬 관계요 자연법칙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자연계에선 엉뚱한 현상이 종종 눈에 띄고 있다.
물고기가 뱀을 물고 발버둥치는가 하면 개구리가 뱀을 물고 혈투를 벌인다. 또 뱀을 잡아먹던 백로가 되레 뱀에게 물려 혼쭐나는 광경이 목격되기도 한다. 이른바 피식자들의 반란이다.
또 동족간에 잡아먹는 카니발리즘도 눈에 띈다. 뱀이 뱀을 잡아먹는 희한한 광경이 실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자연스러운 섭식건강한 생태계
우리 생태계는 아직도 건강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많다. 비록 생태계의 일원인 야생동물들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그 구성원들은 여전히 자연스러운 먹이사슬체 안에서 자연스러운 섭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농약 등 유해물질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 하천 둑에서는 호랑거미가 거미줄에 걸려든 애기좀잠자리를 잡아먹고 길섶 쑥부쟁이에선 사마귀가 고추좀잠자리를 물어뜯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사진 1 , 2 >
또 야산자락의 찼ㆎ나무와 말채나무, 산딸나무 등에서는 노랑지빠귀와 개똥지빠귀 같은 각종 새들이 자연스레 열매를 따먹고 있다.<사진 3>
취재팀은 좀 더 생생한 먹이사슬 현장을 포착하기 위해 현지 지리에 밝은 두 전문가(남윤창·정대수씨 등 생태연구가)를 초빙, 지난 9월초부터 괴산·보은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 취재에 들어갔다.
취재에 들어간 지 일주일여가 지난 9월 9일, 드디어 괴산 청천의 남군자산 자락에서 살모사가 들쥐를 잡아먹는 장면이 포착됐다.
어른 엄지손가락 굵기 만한 살모사가 제 몸의 3~4배나 되는 들쥐를 물고 정신없이 몸을 굴리고 있었다. 그러길 10여 분, 들쥐의 숨이 멎자 살모사의 입이 놀라울 만큼 벌어지면서 들쥐의 몸이 서서히 빨려들기 시작했다.<사진 4 >
그로부터 11일 뒤인 9월 18일, 속리산 인근의 산골마을(보은군 산외면)에 야생 오소리가 자주 출몰한다는 제보를 받고 야간촬영에 들어갔다. 위장망을 치고 기다린 지 2시간여가 지나자 오소리 1마리가 주변을 경계하며 잠시 나타났다가 서치라이트 불빛이 낯설었는지 이내 풀숲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5분여가 지났을 때 바짝 긴장한 취재팀 앞에 또다시 모습을 드러낸 오소리 입에는 무엇인가 물려있었다. 흔히 꽃뱀이라 불리는 유혈목이였다.
풀숲에 들어갔다가 먹잇감인 유혈목이를 발견하고는 그를 잡아 밭가로 나온 것이다. 오소리는 약 60cm의 유혈목이를 3~4분만에 먹어치웠다.<사진 5 >
취재팀은 지난 7월 초에는 누룩뱀이 중형조류인 꾀꼬리의 새끼를 잡아먹는 장면을 촬영한 바 있다.
당시 누룩뱀은 높이 5m가량의 밤나무에 기어올라 꾀꼬리 둥지 안에 있던 새끼 4마리 중 1마리를 입으로 낚아채 질식시킨 뒤 1시간여에 걸쳐 머리부위부터 집어삼키고 나무아래로 사라졌다.<사진 6>
◇ 부자연스러운 섭식불안한 생태계
야생 세계의 먹이현장을 찾아 나선 지 20여일이 지난 9월 23일, 그동안 말로만 듣던 기이한 장면이 포착됐다.
다름 아닌 유혈목이가 유혈목이를 잡아먹는 이른바 동족간의 카니발리즘이 목격된 것이다. <사진 7 >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 부근서 발견된 이 유혈목이간의 카니발리즘 장면은 약 70cm 크기의 커다란 유혈목이가 약 45cm 크기의 유혈목이를 꼬리부위부터 집어삼키고 있는 희귀한 장면으로, 온전한 생태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기를 쓰고 집어삼키려는 포식자측의 유혈목이와 그 포식자의 몸을 감고 발버둥 치는 피식자측의 유혈목이 모습에서 '불안한 우리 생태계의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동행했던 정대수씨는 "뱀이 뱀을 잡아먹는 장면이 간혹 눈에 띈다고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능구렁이가 무자치(물뱀)를 잡아먹거나 하는 등의 타종간에 일어나는 일이지 이번처럼 동종끼리 잡아먹는 장면은 말 그대로 부자연스러운 섭식관계로서 생태계의 이변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성식 생태전문기자 노진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