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직박구리가 몰려오다
10. 직박구리가 몰려오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0.13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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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다큐 위기의 야생(野生)
⑥ 산딸나무 열매를 먹고 있는 직박구리

생태변화 알리는 징후이자 경고장

10년새 개체수 급증…조류상 우점 서열까지 뒤바껴

글·사진 김성식 생태전문기자 노진호기자


우리나라의 텃새 주도권을 불과 10년 안팎의 짧은 기간에 거머쥔 '생태계의 새로운 강자'가 있다. 직박구리다. 직박구리는 전 세계에 분포하는 122종의 직박구리과 가운데 한반도에 사는 유일한 새다. 우리나라엔 바다직박구리, 꼬까직박구리, 호랑지빠귀, 흰배지빠귀, 노랑지빠귀처럼 명칭과 생김새가 비슷한 새들이 많지만 이들은 과가 다른 지빠귀과다. 자주 혼동하는 찌르레기도 과가 다르다.<사진 1,2,3>

그동안 우리나라를 대표해 온 텃새는 참새였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참새들이 자주 보이고는 있지만 주도권은 이미 다른 새들에게 넘어갔다. 그 '다른 새들'중 하나가 직박구리다. 예전엔 웬만한 곳에선 참새들의 수다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은 "삐~잇 삐~잇"하는 직박구리 울음소리가 더 많이 더 크게 들려온다. 덩치가 참새보다 훨씬 큰 데다 소리 또한 더 요란하기 때문에 그들이 있는 곳엔 참새는 얼씬도 못한다.

한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 새를 잘 모르고 있다. 이름은 물론 모습도 생소해 한다. 그러면서도 최근 들어 처음 보는 새들이 부쩍 많아졌음은 인정하고 있다.

터줏대감격인 참새의 생태적 지위를 시나브로 무너뜨려 조류상의 우점 서열까지 뒤바꾸어 놓고 있는 새 '직박구리'를 집중 취재했다.

① 흰배지빠귀
② 노랑지빠귀
③ 찌르레기


◇ 직박구리는 어떤 새인가

직박구리(학명 Hypsipetes amaurotis)는 분류학상 참새목(目)에 속하나 몸 길이가 28~29cm로 참새의 두 배가량 된다. 몸색깔은 전체적으로 회갈색을 띠나 머리와 등은 푸른 회색이고 눈 뒤로 밤색 반점이 있다. <사진 4,5> 옛 사람들은 이 새를 '후루룩 빗죽새'라고 불렀을 정도로 우는 소리가 독특하고 시끄럽게 우는 특징이 있다.

이 새가 어느 새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지리산 남쪽자락의 시골 마을이나 남해안, 제주도 등지에 갔을 때 대나무숲 혹은 동백나무숲에서 "삐~잇 삐~잇" 거리며 요란 떨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물결이 파도치듯 파상적으로 날던 인상적인 새를 생각하면 된다.

이 새가 남쪽지방, 특히 남해안과 제주도 등지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은 본래 한반도의 중부지역을 정점으로 주로 그 이남 지역에 분포하던 새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국내 조류관련 서적을 보면 한국의 중부이남을 비롯해 일본, 타이완, 필리핀 등지에 분포한다고 설명돼 있다. 분포도상으로 보면 우리나라 중부지역이 북한계인 셈이다. 그만큼 '남쪽 새'에 가깝다.

조류학계의 이우신박사도 '우리 새 백 가지(1994년)'란 책에서 이 새를 '남쪽 바닷가에 터를 잡은 새'라고 소개한 바 있다.

또 한 가지. 이 새의 한반도 분포도가 그동안 중부지역 이남이라고 알려지긴 했으나 적어도 10년전까지만 해도 내륙지역, 특히 충북 이북의 내륙지역에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던 '낯선 새'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의 판도는 크게 달라졌다. 충북은 물론 경기도와 서울지역, 심지어 강원 내륙지역까지 서식지가 눈에 띄게 넓어졌다.

최근 조사결과를 보면 서울지역에서는 이미 비둘기, 까치 다음으로 많은 새가 됐다. 참새를 세 번째 순위에서 몰아낸 것이다. 이러한 추이는 충청권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④ 봄철의 직박구리 모습
⑤ 가을철의 직박구리 모습들

◇ 생태계 변화의 뚜렷한 징후다

중부 이남, 정확히 말해 충북 이남지역에 주로 서식하던 직박구리가 최근 들어 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일까. 지난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중부 내륙지역에서는 낯설던 새가 불과 10년 안팎에 남한 전지역을 점령할 만큼 개체수가 급증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연생태계에 있어 한 종의 개체수가 갑자기 늘어났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더구나 직박구리처럼 텃새의 우점구도를 뒤바꿀 만큼 단 기간내에 개체수가 크게 늘어난 경우는 우리 생태계가 맞고 있는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일부에선 "직박구리에 의한 조류 생태계의 이변"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심지어 "직박구리의 대란"이라고까지 말하는 이도 있다.

이는 한마디로 우리나라 자연생태계에 큰 변화가 왔음을 알려주는 경고다.

직박구리의 급증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한반도의 기후가 변화하면서 조류 생태계(특히 조류의 분포도)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증거란 지적이다.

텃새는 말 그대로 계절이 바뀌어도 이동하지 않고 한 지역에 머물며 번식하는 새이다. 이는 그 지역에서 나고 자라 생활사와 습성이 완전히 그 지역의 기후와 환경에 맞도록 적응한 까닭이다. 그러기에 텃새가 자신의 서식영역을 넓혀나간다는 것은 그들이 살기에 적합한 기후와 환경이 보다 넓은 지역으로 확대됐음을 의미하는 확실한 증거란 주장이다.

또 다른 시각은 직박구리의 서식여건이 변화해 개체수 급증을 가져왔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직박구리가 왕성한 식욕과 뛰어난 적응력을 가진 새란 점을 강조한다. 즉, 태생적으로 탐식성과 뛰어난 적응력을 가지고 있는 데다 최근 들어 먹잇감 증가와 같은 서식여건마저 양호해져 개체수가 크게 불어났다는 얘기다.

국립중앙과학관 백운기 박사(조류분류학)는 "최근 숲가꾸기 사업이 이뤄지면서 우리 주변에 유실수와 큰 나무숲이 눈에 띄게 많아지는 등 직박구리가 서식할 수 있는 여건이 과거보다 크게 개선된 게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 각종 과수에 '입질' 문제점 부각

직박구리의 먹이습성은 본래 이른 봄철엔 나무의 새순과 꽃망울을 따 먹거나 살구꽃, 동백꽃 등의 꿀을 빨아 먹는다. 여름엔 주로 곤충을 잡아 먹으며 가을엔 산딸나무, 찼ㆎ나무, 말채나무와 같은 각종 나무의 열매를 즐겨 먹는다. <사진 6>

그러나 최근 개체수가 급증하면서 오미자, 오갈피, 구찌뽕나무 등의 열매는 물론 포도, 감, 사과, 배 같은 각종 과수와 농작물까지 서슴없이 먹어치움으로써 농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괴산군 청천면에서 과수농사를 짓는 김응학씨(52)는 "수확철을 앞두고 잘 익은 사과와 감만을 골라 먹어치우는가 하면 심지어 약재로 재배한 오미자와 오갈피나무 열매까지 따 먹는 바람에 피해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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