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地選과 궁예·견훤의 환생
내년 地選과 궁예·견훤의 환생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0.12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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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덕현 <본보 편집인>
요즘엔 장삼이사들에게도 사석의 가장 좋은 안줏거리는 단연 선거다. 10·28 재보궐선거의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도 때가 때인지라 코앞으로 다가 온 내년 지방선거를 놓고 이미 숱한 얘기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들의 소리를 경청하다 보면 벌써 개표가 끝났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절대로 안된다는 '결과'가 거침없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선거 때마다 늘 반복되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좀 양상이 다르다. 단순히 개인감정 차원의 의사표현이 아닌 구체적 데이터를 수반한 진단이 내려지고 있다.

특히 자치단체장들의 경우 2006년 출마 당시와 취임 이후의 행적이 도마 위에 올려져 하나부터 열까지 비교 평가되기 일쑤다. 사람의 변질, 시쳇말로 권력을 잡고 난 이후에 주변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당사자에 대해선 냉혹하리 만큼 여론의 난도질이 가해진다.

이때쯤 되면 재선이나 3선을 바라는 자치단체장들은 자신만의 치적을 포장하고 홍보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아닌게 아니라 선출직들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평가의 잣대는 그가 재임 중에 무슨 업적을 남겼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엔 선거공약의 이행여부가 해당되기도 하고 또 특단의 정책사업 추구나 유치가 좋은 소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을 지지하고 뽑아 준 유권자들이 정작 관심을 갖는 부분은 능력보다도 '인간의 됨됨이'다. 이는 원천적으로 익명성의 보장이 쉽지 않은 지방나름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말 그대로 한두 다리 건너면 모든 사람이 서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지역사회에서 선출직에 대한 평가는 바로 1차적 인간관계로써 점수가 매겨지게 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느 자치단체장이 재임 중에 큰 업적을 남겼고 또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는다고 하더라도 주변인 중 누구 한 사람일지언정 "그 사람 기본이 안됐다"고 떠들어 대면 여론은 금방 부정적으로 확산된다. 그 부정적 평가의 진원지가 만약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라도 될 경우 파급력은 더 세다.

실제로 지금 사석에서 내년 지방선거의 낙선이 적극적으로(?) 점쳐지는 인물은 십중팔구 이런 연유가 배경이 돼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다만 본인들만 모를 뿐이지 이미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내년 지방선거의 관전포인트가 된지 오래다.

이를 의식한다면 비록 때는 늦었지만 스스로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초심을 잊지는 않았는지, 내가 어려웠을 때 진정어린 애정과 용기를 준 사람들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무엇보다도 자리에 앉고 나서 힘에 도취되지는 않았는지를 반성하면서 말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여론이라면 몇몇은 구제받기가 힘들 것같다. 이들의 공통점은 조직의 내부에서조차 '아니올시다'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후삼국의 세 인물을 비교하며 현직 자치단체장들의 내년 운명을 가늠하기도 한다. 시대는 달라도 지금의 시중 여론과 유사점이 많다는 데 기인한다.

왕건은 용맹하면서도 지혜로우며 덕이 높았기 때문에 추종자들의 자발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 고려의 태조가 됐다. 반면 궁예는 초기엔 왕건까지 휘하로 삼으며 기세를 떨쳤지만 권력을 쥔 후엔 포악한 성격에다 부하는 물론 처자식까지 의심하다가 끝내 죽이고서야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견훤은 조직의 통솔력은 뛰어났지만 정작 내부에서 자생하는 암적인 덫에 걸려 아들 신검에 의해 유폐되는 운명을 맞는다.

지금 바짝 긴장해야 할 자치단체장들은 궁예와 견훤에 비교되는 사람들이다. 직원들과의 신뢰구축이 아닌 그들을 의심하며 오로지 자신만의 '나홀로 행정'에 도취했거나 혹은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정작 내부 구성원들은 꿍꿍 가슴앓이를 하며 이탈을 노리고 있다면 똑같은 꼴을 당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이래서 좋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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