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 계
징 계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0.08 21: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참교육 칼럼
최종돌 <전교조 충북지부 대의원>
오늘 또 지각한 녀석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벌써 세 번째다. 혼나는 게 두려워 등교시간에 헐레벌떡 뛰는 아이들 보기에 지각생을 그냥 두면 통제가 어려워진다. '근면', '성실'이 진정 현 교육의 목표인 양 교사들에게 지각은 예민하다. 지각생의 체벌에는 대다수가 공감해 버린다. 그러나 어떻게 혼을 낼 것인가 말하기 전에, '근면'을 말하기 전에 과연 그 행위가 일방적으로 정해진 규칙 속에서 강요한 행위는 아닌지, '근면'이라는 잣대보다 '동기'는 부여가 되었는지부터 고민해 보았다.

법적으로 0교시 수업에 지각한 것은 지각이 아니다. 아이는 동기부여가 되어 있지 않다. 관악부인 이 아이는 악기 연습을 열심히 하며 도서관에서 책 읽는 것에도 아주 열심이다. 부모님이 맞벌이라지만 아버지의 벌이는 여간 어렵지 않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많다고 한다. 어머니는 용역 일을 하시는데, 아이를 챙겨보지 못하고 나가는 날이 많단다. 학업에 취미가 없지만 독서하는 것이 좋아 시험기간을 앞두고도 책읽기에 정신이 팔려 늦게까지 매달리다 그만 늦잠을 자고 만단다.

통화 중에 미안하다고 울먹이시는데 내가 더 미안했다.

교사인 내가 이런 아이에게 마음껏 책을 읽게끔, 마음껏 악기를 연주하게끔 해 주지 못한 것이 더 미안했다. 한참 성장기의 아이들이 뜬눈으로 아침밥도 못 먹고 학교에 오는데 지각이라고 때리기엔 내 양심이 너무나 나를 비웃고 있었다. '통제'를 말하기 전에 민주시민으로서 '자율'을 말하면 안 되는가. 우리가 얼마나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하는 교육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잔 말이다.

'교사'가 시국선언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 속에는 이미 민주주의가 없다. 더군다나 현 정부의 전교조 간부들에 대한 징계는 더욱 명분도 원칙도 없는 마녀사냥이다. 자기들끼리의 말도 다르다.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 교육감에게 행정가이기 이전에 교육자이어야 한다고 그렇게 말을 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아랫사람인가 보다. 그래 권력을 쥔 자들이 하지 말라는 선언을 했다고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파면에 해임을 시킨단 말인가. 계좌추적까지 한단 말인가.

몇 년 전 모 교원단체가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에 반대하며 발표한 시국선언은 사립학교법 개정(개선) 반대 집회에 학교 교비로 차를 빌려 출장처리까지 하고 간 그들은

재작년 충북 교육계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은 성희롱 교장에게는 그렇게도 넓은 아량을 베풀 줄 아는 분이 전교조에 대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더 큰 권력의 하수인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작년부터 시작된 일제고사로 학교는 파행의 수준을 넘어 썩어가고 있다. 성적비관 자살학생이 생겨났고, 초등 9교시가 생겨났으며,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전학 가라고 협박을 했다. 시험 볼 때 설치하던 칸막이를 없애라는 학교장의 희한한 지침 이야기까지 흘러나온다. 징계의 칼을 뽑았으면 이런 비교육적인 것들을 없애려는 것에 휘둘러야 할 것이다. '통제'를 위해서가 아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더욱 말이 안 된다. 이미 경기 전남 교육감은 사실상 징계를 철회하지 않았는가. 교육감의 의지다. 진정 이기용 충청북도교육감이 징계의 칼을 민주주의를 실천하자고 했던 정의로운 교사들에게 휘두른다면 역사의 심판을 아니 머지않아 도민들의 심판을 아니 지금 상처받는 이 아이들에게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아시길 바란다.

오늘 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이 지각생을 용서해 주는 방법을 고민해 보아야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