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정운찬
아마추어 정운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9.07 2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한덕현 <본보 편집인>
정운찬의 총리 내정에 지역의 비판자들은 크게 두 가지를 지적했다. 그의 정치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때문에 그 카드가 실패할 경우 이명박 정권은 물론 충청도의 이미지에 되레 누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사사건건 어깃장을 놓던 미운오리새끼가 난데없이 MB의 품으로 들어간 것은 가히 파격적이지만 그렇다고 안 될 이유도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른쪽 호사가들은 오바마와 힐러리의 관계를 거론하며 비로소 통합과 화합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도 못내 떨쳐버리지 못한 것은 그가 정부의 2인자로 과연 잘 견뎌내고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는, 그야말로 인간적인 걱정이었다. 비록 그가 한때는 대선주자로까지 부상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는 학자로서의 정체성과 이미지에 머물렀지, 상황에 따라선 형이하학적이고 탈(脫)인간적이어야(?) 하는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금의 정국에선 누가 총리가 되든 엄청난 정치적 내공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한데 공교롭게도 정운찬은 본인 스스로 정치력의 미숙함을 고백한 적이 있다. 2007년 대선 불출마를 발표할 때다. 그는 불출마의 변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는 비전과 정책제시뿐만 아니라 이를 세력화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세력화 활동을 통해서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인정받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나는 여태까지 그런 세력화 과정을 거친 적이 없어 대통령 후보로 부적절하다."

정치세력화라는 단어를 유독 강조한 이 발표문의 행간을 읽으면, 적어도 정치에 있어선 아마추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학자의 신분에서 일거에 총리로 오르는 것은 대통령 후보에서 탈락하며 그가 그토록 자책하던 정치세력화를 단번에 도모할 수 있는 최상의 여건이 될 수 있다. 다만 다른 곳도 아니고 정치판에서 '뜻밖의 선택'은 처음엔 기발한 흥미를 안기지만 그 당사자는 이 때문에 두고 두고 바람을 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운찬처럼 명망은 있지만 정치에선 초년병일 경우 마지막까지 기댈 것은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다. 이는 똑같은 학자출신으로 역시 총리를 지낸 후 대권에까지 오르내린 조순과 이수성이 정치의 뒤안길로 사라진 반면, 지금은 비록 편의적 소신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대쪽 꼰대' 이회창이 나름대로 정치생명을 이어가는 것을 비교해 봐도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총리 내정자 정운찬이 문제의 원칙을 벗어난 말 한마디로 된서리를 맞고 있다. 정권 차원에서 당초 충청 총리론이 모색될 때 지역의 기대감은 다른 게 아니었다. 통합의 정치실현도 중요하지만 세종시 같은 지역 현안의 원만한 해결을 기대한 것이다. 때문에 총리를 맡으려면 세종시 원안추진부터 먼저 약속을 받아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충청의 민심을 감안해 어렵게 선택됐다는 정운찬이 가장 먼저 한 일이란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지역에 대한 대변은커녕 오히려 뒤통수를 내갈긴 것이다. 세상에 이런 같은 경우가 또 어디 있나.

자기를 낙점해 준 대통령의 성은에 아무리 감읍하더라도 이건 정도가 아니다.

충청인을 내세워 충청을 잠재우려는 이이제이(以夷制夷)가 됐건, 여권의 판도변화를 위한 전략이 됐건, 굳이 정운찬이 나서 세종시의 수정을 입에 올릴 필요는 없었다. 정운찬의 입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세종시 문제는 조만간 터질 수밖에 없다.

세종시에 대해 정작 정운찬이 할 일이 있다면 문제가 불거졌을 때 마지막까지 국가적 미래를 위한 대안을 이끌어내는 것이지, 마치 '총리'라는 밥상을 받기 전에 새참을 즐기듯 '세종시 수정' 운운하는 게 아니다. 특히 총리 내정자로서 그가 가장 먼저 했어야 할 말은 따로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이명박 비판자에서 동조자로 변신한 것에 대한 해명 내지 입장표명이 우선이었다.

이런 기본조차 몰랐으니 그는 여전히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고 앞으로 그가 생산해 낼 아마추어리즘에 지금 많은 사람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