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가 살 수 없는 나라
천재가 살 수 없는 나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8.05 21: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현정의 소비자 살롱
유현정 <충북대 소비자학과 교수>
한때 한 학급에 50명이 넘는 아이들이 콩나물처럼 수업을 받던 초등학교 시절엔 학급반장의 권력은 상당했었다. 칠판 한 귀퉁이에 '떠든 아이' 이름을 적고 수업시간마다 '차렷, 경례' 외치는 반장. 선생님 심부름을 도맡아 하고, 체육 시간이면 제일 앞에 서서 구령을 붙이며 조교역할을 하는 반장은 아이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반장을 맡은 아이들은 책임감과 리더십을 배우고 반장임에 프라이드를 느끼며 더 성장,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문제는 오로지 반장만 행복한 세상, 그래서 모든 이가 반장만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유진박 사건을 보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던 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종합적인 몰상식에 대한 분노였다. 누가 뭐라 하든 그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이다. 3세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해 줄리어드음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유수의 오케스트라 입단 제의가 있었지만, 모국이 좋아 한국에 머물기를 선택했다는 그가 10년 사이에 온갖 행사장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는 장돌뱅이 신세가 됐다.

첫째는 인권유린에 대한 분노다.

돈 가지고 따지는 것이 제일 싫고, 음악 하는 것만이 좋다는 우리말도 서툰 사람을 감금과 폭행까지 하며 강제 연주활동을 시킨 이들에 대한 분노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적어도 그에게 걸맞은 공간을 마련하고 그의 음악성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함께 상생할 방법을 찾았어야 한다. 그러나 더 서글픈 건 천재의 몰락에 대한 방관이다. 1년 가까이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서 전과 달리 무력하게 연주하는 달라진 그를 본 많은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이제 유진박도 한물 갔나봐, 이런 데서도 연주를 하다니'하고 흘려버렸을 것이다. 안타까움을 가진 이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수사까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풀어줬다는 것을 보면 그를 직접 본 그 누구도 심각하게 이를 문제상황으로 인식하지 않았던 것 같다.

천재가 살 수 없는 나라. 유진박이 좀 더 악착스럽게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남는 법을 알았더라면 음악밖에 모르는 천재가 아니었다면 이런 어이없는 사태에 직면하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혹자는 지금도 "줄리어드 음대 나오면 마을회관에서 연주 못하나" 할지도 모르겠다. '다름'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천재'가 '보통' 사람들의 상위에 있기 때문에 존중하고 특별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보통의 우리들과 '다른'점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하고 배려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시작된 영재교육은 오히려 진정 영재성을 가진 아이들에겐 기회가 돌아가지도 못하고 애매한 어린아이들만 혹독한 사교육의 전장으로 내몰고 있다. 체로 걸러내듯 0.001점이라도 높은 점수의 아이들이 소위 대학의 랭킹에 따라 1%의 오차도 없이 줄지어 들어가는 사회에서는 천재에 대한 배려가 있을 수 없다. 우리 사회 모두가 잠시 숨 고를 수 있는 프레시존이 진정으로 아쉬운 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