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이 밥먹여주나
인권이 밥먹여주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8.0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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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덕현 <본보 편입인>
경찰의 흑인교수 강제연행으로 촉발된 미국의 인권침해 논란을 접하면서 문뜩 떠오른 건 '인권'이란 단어의 괴리감이다.

우선 문이 안 열리는 자기 집에 강제로 들어가려 한 행위가 과연 범죄행위에 해당되느냐부터가 궁금했고, 이에 대해 흑인대통령인 오바마가 인종차별을 비난했다가 급거 당사자의 백악관 맥주회동을 주선, 파문을 진정시킨 과정 역시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하찮은(?) 일들이 이른바 인권을 볼모로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시끄럽게 했다.

자기 집 문을 부수는 것조차 주변인에 대한 인권침해로 받아들이는 미국이 약소국과의 전쟁에선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하는 현실은 이러한 괴리감을 더욱 크게 한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한 가지 분명하게 느낀 것이 있다면 제도. 법리적 민주주의의 모범생이라는 미국에서조차 여전히 인권문제는 상존하고 있고, 인권이라는 의미 자체가 참으로 편의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인권이 2년차로 접어든 이명박 정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사회 각계의 시국선언과 종교계의 시국집회가 잇따르더니 급기야 국제사회에서도 대한민국 인권이 논란거리가 됐다.

국가인권위원장의 교체를 놓고 촉발된 어수선한 분위기가 결국 떼어 놓은 당상이라던 세계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의장직을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었다. 또한 아시아인권위원회는 한국의 인권위가 독립성이 훼손되고 신용을 잃었다며 ICC에 등급을 하향 조정해 줄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이유야 어떻든 아주 굴욕적인 얘기들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보수와 진보, 여와 야는 서로가 딴 소리다. 한쪽은 대통령조차 여론과 언론으로부터 동네 북 취급을 당하는 판에 무슨 인권침해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반면, 그 반대에선 수십년 동안 피로써 일군 민주주의가 하루아침에 난도질을 당했다며 아우성이다. 이런 주장들을 무시하더라도 우리의 체감 인권은 가히 위험수준이다. 인권의 본질이 어느덧 심각하게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온통 '나만이 주체가 되는 인권'에만 매몰돼 있다. 하늘이 부여한 천부(天賦)의 권리가 인권이라고 하지만 현실에서의 그 실현은 철저하게 상대성을 띤다. 말 그대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인권'은 상대의 존재와 그 가치부터 인정할 줄 알아야 비로소 설 땅을 얻는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실상은 어떤가. 너는 없고 오로지 나밖에 없다. 시골의 한적한 고등학교에 대통령이 방문한 것을 놓고도 사회가 딱 반으로 나뉘어 죽어라 삿대질이다.

결과론적인 얘기이지만 작금의 극한 대립이 노무현정권의 '오른쪽 무시'에서 출발했든 아니면 이명박 정권의 '왼쪽 탄압'이 원인이든 그 궁극적인 책임은 당대의 집권세력에 더 귀착될 수밖에 없다. 대립의 원인이 어쨌든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통합을 이뤄내지 못하는 데 있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밥먹여주나'가 느닷없이 유행한 적이 있다. 2007년 대선 때다. 경제난을 빌미로 몇몇 후보들이 박정희 신드롬을 부추긴 것이 발단이다. 헷갈리게도 당시 이에 동조하는 국민들이 많았다. 이를 목격하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참으로 취약하구나를 실감했다. 87년 6월 항쟁을 정점으로 하는 정치적 민주화가 그렇거니와 시민의식이 이뤄냈다는 사회적 민주화가 그렇다.

이를 원용한다면 지금쯤엔 '인권이 밥먹여주나'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하루하루가 먹고살기 힘든 판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럴 때 우리에게는 민주주의와 밥, 그리고 인권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자본주의의 본질, 경쟁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내몰리는 빈곤의 악순환과 극빈자 속출현상을 마냥 방치할 수는 없다. 아홉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단 한 명의 무고한 시민이 다치면 아니 되듯, 단 한 명의 힘없는 국민이라도 지금 고통 속에 신음한다면 지도자는 새로운 리더십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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