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를수록 뿌리는 깊어진다
세월이 흐를수록 뿌리는 깊어진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7.09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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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칼럼
허건행<전교조충북부지부장>
   시대의 역행을 걱정하는 1만8000여명의 장한 교사들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가르치겠다며 성실하게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가르치는 내용을 몸으로 보여준 성실의무의 수행이었다. 공인으로 미래 우리사회의 주인인 아이들에게 소통이 민주주의의 바탕이며 소통단절의 사회는 파시즘 사회의 특징임을 몸으로 알린 성실한 직무수행이었다.

성실의 요체는 언행일치가 아닌가. 사회의 위험 징후에 대해 진실을 등에 업고 진정성으로 북을 울리는 실천적 지식인의 모습이었다. 지식인의 시대적 소명을 선언의 형태로 성실히 수행했다.

반면, 가르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별개라는 해괴한 논리로 사회를 현혹하는 자들이 있다. 그저 교사는 국가에서 주는 녹이나 받아먹고 아이들이 점수 따는 것에만 신경 쓰라는 주문에 걸린 자들이다.

헌법에 명시 된 표현의 자유는 명문화된 것만으로 그 가치가 충분하다고 느끼는 이 정부의 교육, 정치 관료들. 그들이 1만8000여 교사들을 범법자로 내몰고 징계의 칼날로 말 줄을 놓으라고 협박하고 있다.

그들에게 1만8000여 교사는 교사가 아니라 징계 대상자일 뿐이다. 어디에도 교육적인 고려나 숙고가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고려만 있을 뿐이다. 시국선언교사에 대한 대량징계시도는 침묵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자들의 소망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국민이 부여한 공익의 권력을 사유화해 사유화한 권력의 힘으로 충성스러운 견공들에겐 말 길을 틔워주며 독사의 혓바닥으로 국민을 바보로 만들려는 의도를 숨기지도 않는다. 상식이하의 논리가 상식을 뒤엎는 일들이 버젓이 눈앞에 전개되니 넋을 잃을 지경이다. 후안무치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들이 뇌 없는 불도저처럼 무지막지하게 세상을 갈아엎으니 소신 있고 양심 있는 교사들이 아이들 앞에서 유구무언이다.

교육을 앞장세워 교육을 죽이는 희한한 일들이 백주대낮에 자행되고 있으니 이 또한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할 지경이다. 넋을 잃고만 있을 일인가. 이런 일이 교직사회에, 크게는 사회적 반향 없이 그대로 진행되어 1만8000여 교사가 징계가 되고 노동조합의 전임자 모두가 교육 현장에서 내쳐질 때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성벽은 급속도로 무너지고 사회는 파시즘의 수렁으로 빠질 것이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이 파렴치한 행동에 대해 저항의 중심에서 교육주체들이 당당히 맞서야 한다. 교사가 양심을 버리고 말 줄을 놓고, 국가주의 시장교육에 충실한 마름 짓을 할 때 진정 학생은 없다. 진정 학생이 없다면 미래 또한 없다. 공동체 사회를 이어 갈 아킬레스건인 공교육을 시장화하고, 학교를 영리 목적의 학원으로 탈바꿈시키고, 계층 고착을 완성하는 학교, 교원 정책의 시도는 민주주의의 역행과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차별과 배제를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며 삶을 전쟁터로 만드는 제반 교육정책에 대해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가 없다면 민주주의의 완성은 요원하다. 기가 막히는 일이 아무런 교육적 숙고 없이 진행되는 학교 현장에 대해 넋을 잃기보다는 옹골차게 단결하고 연대해 힘찬 저항의 함성을 내야 한다. 교사가 진리와 가치에 말 줄을 놓으면 아이들 앞에 제대로 설 수 없다. 배우고 가르치는 내용이 그대로 현실에 부합할 수 있도록, 학생 앞에 자랑스럽고 역사 앞에 당당한 교사가 되는 길. 말 줄을 단단히 움켜쥐고 뿌리를 굳게 내리는 일이다.

나무는 상처를 입으면 옹글게 제 상처를 치유하고 단단한 옹이를 제 가슴에 박는다. 세월이 흐를수록 뿌리는 깊어지고 수많은 생명을 품는 큰 나무가 된다. 어찌 과정에 거친 칼바람과 뼈 시린 서리가 없었으랴. 칼바람과 서리를 내리 당당하게 받으며 고난신고의 깊이만큼 그만큼씩 뿌리내리고 가지 뻗었으리라. 저항하자, 교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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