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가르침의 쓸모
위대한 가르침의 쓸모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7.01 21: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철학으로 읽는 세상이야기
김귀룡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갑갑한 심정이다. 아무리 외쳐도 돌아오는 메아리가 없으니 허탈하기도 하고 무기력증이 생기기도 한다.

출구 없는 방에서 헤매고 있는 느낌이다. 참 어쩌자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탈출구로 두 가지가 떠오른다.

그 하나는 행동하는 양심이 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철학적, 종교적인 수양의 자세로 돌아가는 길이다. 우선 답답함을 달래는 방식으로 수양의 길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부처는 깨달음 이후 실천적 수양의 태도로 8정도를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다음으로 12연기(緣起)를 설한다. 세상만사가 모두 무엇엔가 의존해서 일어난다는 것이 연기설의 요체이다.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이 없어진다." 이는 스스로 존재하는 건 없고 만사가 어디엔가 의존해서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걸 말하고 있다.

자존(自存)적인 것이 없다는 가르침은 우리에게 많은 걸 알려준다. 인간들은 자기가 세상의 중심인 줄 알고 산다. 어느 누가 뭐래도 스스로 설 수가 있다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인간들은 내가 있으려면 다른 것이 없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상대를 눌러야 자신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만사는 연(緣)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진다. 세상의 이치는 연기(緣起)라는 말이다. 스스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은 자신을 세우기 위해 오만가지 일을 다 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다가오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스스로를 세우려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처는 스스로를 세우려는 헛된 노력을 접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태어난 자들은 반드시 죽는다. 왜 죽어야만 하나.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것(태어남)이 있기 때문에 저것(죽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태어나지 않으면 된다. 곧 이것(태어남)이 없어지면 곧 저것(죽음)이 없어진다. 왜 태어나는가. 그건 있고자 하는 잠재적 충동(有)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有)이 없어지면 저것(生)이 없어진다. 이 같은 질문을 계속 해 보면 12가지 연쇄를 거쳐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무지몽매함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무명(無明)에 이르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무명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태어난 인간들의 최후 종착지인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무명으로부터 벗어나는 위대한 자유의 여정이 수양이고 명상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삶과 죽음이라는 인생의 근본 문제를 직시하라는 부처의 가르침 앞에서 남보다 조금 낫게 되려고 발버둥치는 인간들의 삶의 모습은 얼마나 초라한가. 또 스스로가 결정한 길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강변하는 인간의 모습은 얼마나 가소로운가.

모두가 피해갈 수 없는 이런 의문에 정면으로 맞서서 죽음의 사슬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주기 위해 세상만사가 어떤 이치에 따라 일어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연기설(緣起說)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연에 따라 일어난다는 걸 알기만 하면 되는 건가. 이에대해 부처는 다음처럼 말한다.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지 뗏목에 매달려 있으면 강을 건널 수 없다고. 세상의 이치를 설하면서도 그 세상의 이치가 옳다는 생각에 매달려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하찮은 생각에 매달려 그걸 꺼트리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대는 인간들 가운데서 세상만사의 이치를 설하면서도 그걸 버리라고 말하는 부처를 보면 가슴속 답답함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