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그 위험한 유혹
전쟁, 그 위험한 유혹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6.22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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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덕현 <본보 편집인>
   지난 18일 청주시민회관에서 열린 충청보훈대상 시상식, 충청타임즈가 올해로 서른다섯번째 주최한 이 행사는 6·25로 대표되는 국가 위기 때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과 그 후손들의 공훈을 기리는 자리다.

행사 취지가 이렇다 보니 참가자 대부분은 나이가 아주 지긋한 참전용사이거나 전쟁통에 반려자를 잃고 한많은 세월을 살아 온 할머니, 그리고 그 가족들이다. 매년 이 행사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지만 이 자리에 나오면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6·25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전해진다.

팔다리 등 신체 일부가 없는 할아버지들의 굴곡진 인상에 어느덧 숙연해지는가 하면, 10대 혹은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청상이 된 할머니들의 한(恨)서린 사연엔 감정이 복받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아직도 '전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퍼뜩 깨달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민족간 학살로 표현되는 6·25전쟁의 인명 피해는 사망 150만명을 포함해 무려 500만명이다. 지금의 인구로 따지더라도 10명중 1명이 죽거나 다쳤다. 이 많은 숫자가 전장, 혹은 이름 모를 산과 들녘에서 스러졌는데도 지금 국민들의 체감지수는 마치 '남의 나라 일'인 것처럼 되어 버렸다. 중·고등학생은 물론이고 대학생조차 6·25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조사까지 나왔잖은가.

6·25가 끝난지 56년, 이처럼 기억은 멀어져 가지만 그 비극은 우리 주변에서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런데도 지금, 다시 전쟁을 서슴없이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물론 북한의 도발이 발단이다. 정부의 대북 강경론에다 무력에는 무력으로 맞선다는 사회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북한과의 일전불사를 토로하는 결기도 사석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호전(好戰)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즘처럼 전쟁의 가능성에 대해 국민들이 폭넓게(?) 인지한 적도 없다. "실제 전쟁이 나는 줄 알았다"는 군대간 아들로부터의 안부전화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부모들이 많아진 것도 최근의 달라진 세태라면 세태다.

핵주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강경론의 압권이다. 일부 언론까지 나서 이를 부추기자 보수계로부터도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는 마당에 우리도 핵을 갖자는 논리는 일견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이판사판식의 맞대응은 적어도 한반도에서만큼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가장 금기시돼야 할 발상이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우리의 핵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저변엔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게 깔려 있다. '평화적인 이용'이라는 대의명분은 이승만의 북진통일론과 박정희의 핵무기 개발시도로 이미 설 땅을 잃었다. 저들의 시각에선 핵의 위험성은 북한이나 남한이나 똑같이 적용된다.

김정일이 핵을 들고 덤벼드는 상황에서 남한까지 핵으로 무장한다면 손바닥만한 한반도의 운명은 불문가지다. 핵은 우리에게 있어 최악의 선택이 되고, 이것이 마지막까지 북한을 설득해야 하는 이유다. 도발에 대한 강력한 조치와 끊임없는 평화 추구는 별개문제다.

전쟁에는 두 가지 전제가 필히 따른다. 명분과 실리다. 이 중 한 개만 없더라도 그 전쟁은 곧 역사의 실패와 비극으로 자리매김된다.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은 원초적으로 두 가지를 모두 잃게 된다.

그 보다도 전쟁은 인간의 모든 것을 능멸하고 부정한다. 오로지 죽이고 파괴하는 것만이 최고의 덕목이 된다. 역사는 전쟁과 함께 발전했다는 말은 못된 승자들의 궤변에 불과하다.

지금, 전쟁이라는 단어가 쉽게 입에 올려지는 것은 우리 사회의 경직화와도 무관치 않다. 갑자기 모든 현상이 나 아니면 너, 아군 아니면 적이 됐다. 그러면서 '응징', '척결', '결사', '옥쇄', '끝장' 등 극단적인 용어가 난무한다. 사회곳곳에 살기마저 넘쳐난다.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변질되어 가고 있을까. 아직도 이런 의문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결국 전쟁마저 두렵지 않다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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