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캄핌톨리오 언덕과 콘스탄대제 개선문
<181> 캄핌톨리오 언덕과 콘스탄대제 개선문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6.22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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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덕의 오버 더 실크로드
콘스탄티누스 대제 개선문에 새겨진 부조들.
옛제국의 큰 함성 귓가에 들리는 듯

로마·황제 공회장 중심 유적·신전 등 역사의 흔적 고스란히

로마공회장과 황제들의 공회장을 중심으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많은 유적과 신전, 역사의 흔적들이 흩어져 있는 곳이다.

최고 행정 중심기관이며 사법기관이기도 한 원로원을 비롯하여 179년에 건축된 에밀리아 회당, 시저에 의해 세워진 줄리아 대성전,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시대의 신전 중 하나인 '사투르누스'신전은 캄피톨리오 언덕배기에 있는 국가의 중요한 재물을 보관하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원로원 다음으로 회당들과 신전들은 공회장에서 중요한 건물들이 되었다. 특히 여사제 신전인 베스타 신전은 미네르바 여신의 형상과 에네아스가 트로이로부터 가져온 성물을 비롯하여 로마의 영원성을 상징하는 성화가 모셔져 있었다.

로마사람들은 이 성화가 꺼지는 날에는 로마에 재앙이 닥칠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이 성화를 지키기 위해 여섯 살에서 열 살 사이의 귀족가문 소녀들 중에서 선발하여 30년 동안 순결을 지키며 제관의 임무를 수행하게 하였다. 이 처녀들이 순결을 잃거나 성화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을 때는 퀴리날레 언덕 부근에 생매장을 하였다 한다. 이 신전 뒤에는 제관들이 집단생활을 하던 집의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콜로세움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서기 70년 예루살렘 정벌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티투스 황제 개선문이 나타난다. 황제가 사망한 후 원로원과 로마시민들이 서기 81년에 세웠다. 개선문 내벽에는 예루살렘 신전의 보물들을 운반해가는 모습과 유대인 포로들을 노예로 끌고 오는 모습, 개선하는 티투스의 모습이 부조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서기 203년 원로원과 로마시민들이 파르티아와 아라비아, 아시리아 등지에서 있었던 전투에서 승리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와 그의 아들 카라칼라와 제타에게 헌정한 개선문 상단에는 빼곡한 라틴어 기념비문이 적혀있다.

오른쪽 에밀리아 공회당 터엔 가지런히 정돈된 주춧돌과 대리석 조각들이 고요히 잠들어 있다. 팔라틴 언덕 위에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저택이 남아 있고 유명한 아폴로 벽화도 감상할 수 있다.

언덕 위의 푸른 수목들의 열린 공간 사이로 유적들의 모습이 언뜻언뜻 스쳐지나가고 있다.

푸른 잔디와 잡초 사이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대리석조각들과 폐허가 된 주춧돌들, 파괴된 기둥 가운데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는 몇 개의 대리석 기둥들과 무너진 건물 잔해들을 보노라면 마치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 이민족의 침입으로 몰락해가는 로마제국의 신음소리를 듣는 것 같은 환영마저 떠올리게 한다. 태국의 고대왕국 아유타가 미얀마의 침략으로 파괴되고 멸망한 유적지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그 충격과 아쉬움을 여기서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수십 길 땅 밑에서 과거의 영광을 간직한 유적들을 보면서 섬광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무수한 상념들이 발길을 막았다. 잠시 길을 멈추고 주저앉아 낯선 세계에 들어선 이방인의 눈길로 유적 터를 굽어 보았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개선문 전경

◈ 밀비오다리 전투 승리 기념 건축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건립 배경


황제들의 공회장(포럼)을 지나 콜로세움 원형경기장 입구에 도착하면 매표소 앞에 늘어선 사람들의 긴 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팔라틴 언덕 방향으로 서 있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 쪽으로 향했다.

4개의 원주기둥과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리석면으로 장식한 개선문에는 장군들과 병사들의 조각상들이 하나의 예술품처럼 조각되어 있다. 가운데 돔형식의 커다란 중앙 문과 좌우의 작은 문 사이로 펼쳐지는 언덕 위의 소나무 숲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빨려들어 왔다. 파리의 개선문과는 다른 느낌을 주지만 섬세한 조각과 병사들의 모습은 퍽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콘스탄티누스는 태양신을 신봉하고 있었는데 그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였다. 황제 계승권 쟁탈을 위하여 막센티우스와 결전을 벌이기 위하여 로마로 향하고 있던 중에 대낮에 갑자기 십자가와 '이것으로 이기리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날 밤 꿈에도 똑같은 광경을 보았다.

콘스탄티누스는 십자가 깃발의 군기를 앞세우고 테레베강의 밀비오다리에서 막센티우스 군대와 접전을 벌여 막센티우스는 대패하고 강에 떨어져 죽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원로원과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로마에 입성하였고 다음해인 312년에 밀라노 칙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교를 공인하였다. 원로원과 로마시민들은 밀비오다리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여 315년 콜로세움 옆에 개선문을 세웠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은 아직까지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어 그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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