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사람이 갑니다
저기, 사람이 갑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6.04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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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사람이 죽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시각 저 역시 산에 있었습니다. 토요일 신새벽, 한 주일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혼자 나선 백화산 길은 온갖 새소리와 신록으로 풍성했습니다.

아, 아, 그러나 백화산 가족바위는 봉하산 부엉이바위보다 위험하지 않았고, 지나는 사람도 없었으며, 따라서 세상의 극렬함을 느끼기에는 부족할 뿐이었습니다.

아, 아, 사람이 죽었습니다.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는 말을 남기고, 마지막이 될 담배 한 모금을 갈망하다가 끝내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누구는 바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여전히 대통령으로 가슴에 남아 있는 존재라며 절규하는 노무현.

그러나 정작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사람이었고, 사람으로 길이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다시 그 시각, 백화산을 지나 상당산성을 거쳐 인간들이 사는 세상으로 내려오는 길에서 바람처럼 듣게 된 비통함으로 허방다리를 딛던 하산 길은 차라리 바위에 부서진 꿈보다 못했을 것입니다.

누구는 그가 서민을 위한, 진정으로 서민의 입장에 서서 고민했던 대통령이었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이는 그런 대통령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절망하며 한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민주주의에 대해 무심코 동화되면서 그 소중함과 가치에 무심했던 것은 아닌지 하는 회한에 저절로 눈물 납니다.

누구는 권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으로서의 체통을 말하면서, 그의 가벼움에 몸서리치며 마음껏 씹어대던 일들을 후회합니다.

그가 우스꽝스러운 발가락 양말을 신고, 떨어진 밥풀을 집어먹던 일들이 (격에)알맞지 않은 것인가요.

대통령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대통령이라는 유기물질로 존재해야만 우리들의 체통과 권위가 함께 서는 일입니까.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소위 기득권과 주류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바르게 하는 것이 그 첫 번째일 것입니다.

그는 지역균형발전을 온몸으로 실천했으며, 지긋지긋하고 고질적인 지역감정의 타파를 위해 장렬하게 산화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분명히 수도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지방에 살고 있으며, 검찰과 언론보다 더 많은 숫자의 주권자가 있으니, 이들이 분명하게 주류가 되어야 합니다.

고향으로 돌아왔음에도 보호되지 못한 대통령.

시인 신동엽이 노래한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와 꼭 닮은 그는 지켜주지 못한 고향과 사람들 속에서 고향에서 산화했으니.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는 노란 풍선과 노란 종이비행기를 하염없이 날리며 부활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사이를 뚜벅뚜벅 걸어 나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아, 아, 그 사람의 죽음은 이제야 우리를 사람일 수 있게 하였으나, 정작 우리는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희망의 꽃봉오리 힘없이 툭- 떨어져 마음 둘 곳 없는 황망함일 뿐입니다.

저기 사람이 갑니다. 그 사람을 닮아 사람으로 살아갈 일이 아득합니다만 그 꽃 희망의 싹으로 자랄 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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