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학습' 민심 향방은
'노무현 학습' 민심 향방은
  • 한인섭 기자
  • 승인 2009.05.31 2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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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한인섭 정치부장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보여준 국민들의 추모 열기는 놀라웠다. 서울역 광장 노제에는 60만명 이상이 운집했다. 운구 행렬은 추모 인파와 한덩어리가 돼 한동안 걸음을 떼지 못할 정도였다.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 절차가 끝난 후 봉하마을 정토원에 유골이 임시안치됐던 시각까지 전국 주요 도시에서 밤새 추모제가 이어졌다.

국민들은 노 전 대통령과 가족, 측근들에 대한 전방위 검찰 수사, 권양숙 여사 재소환으로 정점으로 치닫던 시점에 사저 뒤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내던진 지난 23일 이후 경험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목도했다. 박연차에게 받았다는 640만달러 뇌물 스캔들로 옹색해질대로 옹색해졌던 그의 정치·인생 역정은 일순간 '재평가 국면'으로 전환됐다. 고인(故人)에 대해서는 관대해지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300만명이 넘는 국민이 분향소에 몰린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조문기간동안 노사모로 대표되는 정치적 동지와 지지자들 외에도 가정주부, 직장인, 촌로까지 오열했다. 국민들은 국민장이 치러진 기간동안 그가 살아온 삶과 정치역정, 대통령 임기 5년,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 미처 보지 못했거나, 알지 못했던 부분, 간과한 점을 새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 일종의 과외공부를 한 셈이다.

재임기간 탄핵 정국을 불러온 그의 선거법위반행위, 기득권 세력을 향한 독설에 가까운 그의 말과 처신은 본질과 별개로 피로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많았고, 정치적으로도 찬반이 극명하게 갈렸다. 하지만 그의 정치역정과 재임기간 추진한 정책을 모두 갈아 엎으려는 듯 진행된 상황과 검찰 소환 끝에 벌어진 비극은 동정과 연민, 재평가라는 '반전'을 낳았다.

서울광장과 대한문 주변을 에워싼 경찰버스 장막을 치워달라는 요구가 빗발치자 "분향소를 경찰버스가 막아줘 오히려 아늑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는 서울경찰청장의 말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을 잘 보여준 단면이었다. '소통부재'라는 현실에 대한 분노는 더 많은 국민들을 분향소로 향하게 했다. 그래서 "지금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 정서와 잘 부합해 보인다. 김 전 대통령의 말처럼 국민들은 갑갑증을 느끼고 있다. 경제위기, 북핵위기 등 여러유형의 '위기'가 얘기되지만, 민심만 제대로 추스르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을 풀지 못하는 정권의 소통방식에 더 가슴을 쳤는지도 모른다.

'포스트 조문정국'이 될 6월 임시국회에서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가 관심사다. 향후 정국이 안갯속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당장 전개될 6월 국회는 전초전이 될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미디어법, 세종시법 처리 등 쟁점 사안들이 차례로 기다리고 있는데 민심을 여·야가 어떻게 반영하고, 쓸어 담을지 관심사다. 여권의 변화여부는 더욱 그렇다.

지방 입장에서도 이명박 정부에 대한 태도는 분명 달라질 게 뻔하다. 세종시를 비롯해 혁신·기업도시 등 균형발전 차원에서 추진된 대규모 국책사업들이 이명박 정부에서 크게 후퇴된 점에 대해 충청권·비수도권의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문정국을 거친 민심은 달라졌다고 봐야 옳다. 7일간의 '노무현 학습' 효과 가운데 하나가 균형정책이라는 가치와 이명박 정부와의 '간극'을 새삼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일 게다. 정부나 한나라당은 이 점을 간과하면 지금보다 더 크게 잃을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와 같은 수식어를 스스로 마다했다. 있는 그대로 '이명박 정부'라 칭하고 평가도 받겠다 했다. 민심은 '있는 그대로' 봐왔냐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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