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느림의 미학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5.1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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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발언대
이혜숙<청원 신송초교감>
이혜숙 <청원 신송초 교감>

동그랗게 온몸을 드러낸 채 저만치 서 있던 학교 앞산이 나날이 다르게 한걸음 한걸음 교문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신록의 계절이다.

간간이 비행기 지나는 소리만 들릴 뿐 지나는 사람들의 발소리조차 소음이 될 정도로 조용하기만 한 어느 날 "여기가 신송초등학교 교무실인가요"교무실 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자모 한 분이 찾아오셨다. 전학을 오고 싶은데 올 수 있는가 하고 상담을 하러 오신 것이다.

"그런데 우리학교를 어떻게 아셨는지요"

"여기 다니는 학부모들한테서 들었어요. 이 학교는 학교도 아늑하여 좋고, 아이들을 인성위주로 가르치는 학교라고 하기에요."

큰 학교에서는 아무래도 아이 하나하나에 대해 관심을 가질 기회가 덜하고 작은 학교에서 개별지도를 받으면 아이가 좀 나아질까 해서 전학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얼마 전 아침 등굣길에 3학년 아이가 "선생님, 음악이 참 감미롭죠"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아이들에게서 감미롭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아침 등굣길은 얼마나 행복한 학교인가!

그 여운은 하루 종일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동차 소음과 출근하는 시민들의 발걸음 등으로 부산하고 시끄러운 시내학교의 등굣길과는 사뭇 다른, 산새들의 지저귐을 벗삼아 등교를 하다보면 주변의 자연경관과 더불어 아침음악이 감미롭게 들리는 학교.

교문을 들어서면 커다란 소나무가 우뚝 서 늠름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맞이하고 2층짜리 학교건물조차 콘도처럼 느껴지는 아담한 학교

아이들 58명이 왕따 없는 친구들 사이에서 안전하게 공부하는 학교. 조용한 골마루와 교실. 간간이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뛰어노는 소리가 평화롭기만 한 학교이다.

9명의 장애학생들이 있는 보람반이 있는데, 통합수업이나, 점심시간, 체육시간 등 장애학생들이 이동할 때 장애학생들을 먼저 챙겨주고, 보살피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여기가 바로 아이들의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소풍을 갔을 때 전국의 많은 학교 아이들이 우리와 같은 장소로 소풍을 왔었다.

한 학년의 반이 보람반이라서 장애학생 비장애학생을 짝을 지어 같이 손잡고 보살피며 다니게 하는데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끝까지 자기 짝을 보살피며 챙겨준다.

요즘 아이들답지 않은 우리 아이들의 배려심에 탄복하게 된다.

장애학생들의 손을 잡아주며 같이 보조를 맞추어 느리게 걷는 아이들에게서 난 또 새로운 인생의 진리를 배우게 된다. 느림의 미학을.

느림속의 행복과 사랑을, 희망을.

굳이 '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의 책 제목을 빌리지 않더라도 행복은 혼자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잘 사는 것이 행복한 사회이다. 우리의 아이들처럼 나보다 좀 부족한 친구들을 위해 내 시간을 할애하고, 내가 좀 더 느리게 걷고, 내가 좀 더 양보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가 아니다. 이웃을 돌보는 것이 나를 돌보는 것이고 이웃이 행복한 것이 내가 행복한 것이다.

우리학교는 오늘의 자모처럼 아이들이 주변과 더불어 행복을 느끼고 그들의 행복한 모습에 행복해 할 줄 아는 학부모들이 점점 모여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눈물을 짓다가 가슴을 쓸어내리고 교무실 문을 열고 나가는 자모의 발걸음이 가벼워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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