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베르니니와 보로미니
<175> 베르니니와 보로미니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5.11 21: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함영덕의 오버 더 실크로드
바로크 시대 견인한 숙명의 라이벌

베르니니와 보로미니(1599-1667)는 한 살 차이도 채 되지 않는 같은 또래의 작가이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두 사람의 공통점은 나이를 제외하고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살다간 예술가이다.

성 베드로 성당 건축과정서 조우

두 사람은 성 베드로 성당 건축과정에서 만나게 되었다. 성당 건축을 감독하고 있을 때 소음과 먼지 한가운데서 석수 한 명이 베르니니에게 건축에 관한 그림 몇 점을 보여주었다.

거의 낙서에 가까운 스케치로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를 조화롭고 우아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었다. 베르니니는 보로미니에게 부건축가의 일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보로미니의 꿈이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정통성 vs 독창성… 상반된 예술혼

그러나 보로미니의 경우 베르니니는 완전히 새로운 타입의 예술가를 만난 것이다. 보로미니는 자신의 예술에 온전히 몰입할 뿐 세상에 대해 남들이 하는 말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반면 베르니니는 르네상스의 젠틀맨으로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수많은 일들을 우아한 태도로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보로미니 역시 많은 재주가 있었지만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지는 못했다. 비타협적이고 사교적이지 못한 보로미니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워낙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에 후원자나 감을 찾는 데 큰 불편은 없었다. 교황의 일감을 베르니니가 독차지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베르니니는 이노센트 10세의 누이인 도나 올림피아의 총애를 받고 있었고 교황은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어느덧 두 예술가는 필생의 라이벌이 되어 있었다. 베르니니는 보로미니에게 건축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쳐주고 성 베드로 성당의 일자리와 일하는 법을 알려준 사람으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는 사이 보로미니는 대단히 많은 일을 해치웠다. 베르니니가 제작한 베드로 성당 발다키노 주변의 거대한 조상이 들어앉은 장려한 벽감(壁龕)들이 보로미니의 작품이다.

보로미니 역시 다른 바로크의 건축가들처럼 고대 로마의 고전적인 전범에서 세부적인 요소를 채용하려는 일에 매달렸다. 그러나 그는 이전의 누구도 보여주지 않았던 형태로 각 세부 요소를 배치할 줄 알았다. 로마의 건축은 정적이다. 땅에 단단히 뿌리박고 움직임이 없는 견고한 영속성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성 베드로 성당의 정면은 길고 평평한 지붕 선으로 무겁고 견고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그러나 보
로미니의 산 카를로 성당은 흐름이 있다. 처마 장식에서 창문과 천장에 이르기까지 세밀한 디자인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 보로미니의 독창성은 빛났다.

베르니니, 나보나 광장 분수 건립

나보나 광장에 있는 베르니니의 화려한 분수에 대적한 보로미니의 작품은 로마의 매음굴이 있었던 곳에 세워진 작은 교회였다.

이곳은 초기 기독교도였던 성 아그네스가 강간당할 위기에 처했던 곳이다. 당시 기적처럼 그녀의 머리가 쑥쑥 자라 벗은 몸을 모두 가려주었고 그녀는 황급히 처형되었는데 반종교개혁에서는 이 성녀의 교회를 최고로 장엄하게 재건립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예술적 환경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신동으로 유명했던 베르니니와 석수장이 집안의 가난한 노동자 출신 보로미니의 예술적 삶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바로크 문화를 꽃 피우고 있다.

보로미니, 자살로 화려한 생 마감

평생 동안 부와 명성을 누렸던 베르니니에 비해 타협할 줄 모르는 장인 기질과 자살로써 생을 마감했던 고독한 보로미니의 생애는 동시대 필생의 라이벌 관계였던 두 예술가가 얼마나 다른 극적인 삶을 살다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곳이 나보나 광장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동시대 바로크 문화를 꽃 피우며 불꽃 튀기는 경쟁관계였던 두 거장의 삶을 생각하며 푸른 하늘가를 쳐다 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가슴에 스며든다. 눈부신 햇살이 눈가에 쏟아지고 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가까이 다가서는 소리가 들려온다.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들면 가로등 불빛아래 달콤하고 감미로운 대화를 나누거나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길 수 있는 나보나 광장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곳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과 바로크 양식의 건축들을 감상하면서 가로등 불빛 속에 펼쳐진 광장의 낭만을 만끽해 보는 것도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다.

한 시간쯤 더 광장에 앉아 목 놓아 쉬고 싶은 심정이지만 이별의 시간이 초침처럼 가슴을 저미어 온다.

베르니니의 아폴론과 다프네 자살로써 생을 마감한 보로미니의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

베르니니의 나보나 광장 조각 분수.나보나 광장 조각분수 전경.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 조각상.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