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은 독(毒)이다
고환율은 독(毒)이다
  • 남경훈 기자
  • 승인 2009.05.10 2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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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남경훈 경제부장
   일본의 평범한 주부 도리 마유미씨(42)의 환(煥)테크 블로그가 인기라고 한다.

   전문대를 나와 직장 생활은 결혼 전 비서로 근무한 것이 전부다. 그녀는 지난 2004년 재혼 후 2006년에 FX(Foreign eXchange) 마진 거래에 눈을 떴다. FX 마진 거래는 금융회사에 맡긴 마진(증거금)의 최고 50배까지 인터넷(HTS)을 통해 외화를 사고 팔 수 있는 장외 소매외환거래를 말한다. 200만엔을 한 달 만에 470만엔으로 불렸다. 그녀의 FX 블로그는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일본에서 인기 블로그 랭킹 2위에 올랐다. 국내에도 그녀의 비법이 책으로 소개될 정도다.

일본에서는 1998년 FX 마진 거래가 도입된 이래 주부들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외환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세력으로까지 성장, 이들을 '와타나베 부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을 기반으로 부를 축적한 '강남 아줌마'에 이상가는 수준이다. 환테크는 이처럼 일본에서 재테크의 최고 수단이 됐다.

지난 1·4분기 국내 대표기업들의 실적은 예상보다 컸다. 어닝 서프라이즈로 불릴 만했다.

청주산업단지의 대기업인 LG화학이나 LG전자도 당초 생각보다 큰 영업이익을 내면서 구성원들조차 적잖이 놀랐을 정도다. 특히 내수 위주의 사업군을 갖고 있던 LG화학은 수출 위주의 정보전자소재 부문을 청주와 오창 중심으로 크게 강화하면서 최근 실적은 과거 수준을 크게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성과를 하나하나 따져 보면 그리 즐거워만 할 일은 아니다. 여기에는 고환율이라는 독(毒)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최악의 환테크로 큰 피해를 본 기업도 많다. 벤처기업으로 출발해 발군의 기술력과 안정된 품질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던 지역 토착기업들은 불과 몇개월전 키코(kiko)라는 환변동 파생상품에 발목이 잡혀 사지(死地)를 헤맸다.

영업손실이 자본금을 다 까먹을 정도로 치명타를 받았다. 대부분 충북 대표 중견기업들이었다. 코스닥시장에서 퇴출까지 고려됐으나 다행히 이는 면했다.

모두가 경제위기속 안정적이지 못한 환율이 가져다준 결과물들이었다. 환율은 이처럼 이중성을 띠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3월2일 1570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급속하게 떨어져(원화값 급등) 지난 금요일에는 1246원을 기록했다. 불과 두 달여 만에 330원가량이나 떨어졌다.

문제는 원화값 상승세가 굳어져 상당 기간 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환율 덕을 톡톡히 누렸던 우리 수출과 기업 실적에 미칠 파장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전선이 험난해지고 수출 채산성 악화로 기업 실적에도 악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품질이나 성능은 선진국에 밀리고 가격은 중국에 밀려 이른바 '역(逆) 샌드위치론'이 순식간에 무색해질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이나 정부나 지금까지 고환율의 달콤한 맛에 젖어 있던 상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미국 자동차업계 3위인 크라이슬러가 결국 법정관리를 받는 처지가 됐고 1위인 제너럴 모터스 역시 강력한 자구노력을 펼치고 있다. 국민의 혈세를 무한정 부실기업에 쏟아붓지 않겠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한 결과다.

고통스러운 구조조정 없이 다 함께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이런 바람은 구조조정 없이는 다 함께 죽을 수밖에 없다는 냉험한 현실을 대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고환율 덕을 봐 엄청난 이익을 창출한 기업들은 그 돈을 구조조정에 투입해 미래 경쟁력 확보에 나설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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