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학원 규제 앞서 공교육 정상화부터
밤 10시 학원 규제 앞서 공교육 정상화부터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5.05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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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
이재경 부국장 <천안>

사설학원들이 요즘 날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느라 정신이 없다. 곽승준 대통령 자문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의 밤 10시 이후 학원 금지 방침 발표 후부터다.

그는 "(반대가 있다면 이에 맞서) 장렬하게 전사해도 좋다"는 비장한 각오까지 밝히며 신념에 찬 목소리로 자신의 정책()을 발표했다. 지난달 27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다.

학원 단체들이 당연히 반발하고 나섰다. "사교육 수요를 만들어낸 것이 정부의 잘못된 공교육 정책 탓인데 학원들만 탄압하려 한다"며 잇따라 성명을 발표했다.

학원들로선 업권에 치명상을 입는 정책인지라 그 반발 강도가 보통 센 게 아니다. 방과 후 사교육 현장의 '타임 테이블'을 들여다 보면 학원들의 반발하는 이유가 그럴 만도 하다.

보통 고등학교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오후 6시. 지방 도시는 대부분의 일반계 학교가 야자(야간자습)를 하는데, 이게 끝나고 밤 10시가 돼야 학원에 도착한다. 이후 2~3과목 정도 수업을 들으면 밤 12시. 학원 수업을 10시 이후엔 할 수 없도록 강제한다면 학원들로선 문을 닫는 수밖에 없다. 해장국집 주인에게 장사를 새벽엔 하지 말라는 소리랑 똑같다는 얘기다.

학원들로선 생계가 걸린 문제여서 그렇다고 하지만 학부모들의 우려도 만만치않다. 곽 위원장의 발표가 있은 날, 최미숙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대표가 한마디 했다. 공교육 개선방안을 먼저 내놓고 사교육 문제를 손대야 하는데 선후가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어설픈 정책 입안으로)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혼란만 주고 있다"며 "목표점없이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모습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손사래까지 쳤다.

곽 위원장이 자신의 '밤 10시 이후 학원 금지 정책'을 밝히며 "1000만 이상의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원들에 대항해) 우리 편이 되어 줄 것"이라고 말한 것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선 공교육 정상화, 후 사교육 정비'의 순서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주변 고3 수험생 부모들의 얘기를 들어보더라도 최 대표의 말에 공감이 간다.

"학교 수업만으로 따라잡을 수 없어요. 저라고 한 달에 사, 오십만원씩 들여 학원에 보내고 싶겠습니까."

"야자시간엔 자습만 한데요. 수업시간에 이해 못한 내용을 다시 배우고 싶어도 개별적으로 가르쳐주지 않아요."

"아차 해서 중하위권으로 성적이 밀려버리면 학교에선 낙오돼요. 내신성적이야 나쁘기 때문에 수능이라도 잘 보도록 하기 위해서 학원에 보내죠."

"고등학생 아이가 영어 발음기호도 모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공교육 기초 체력은 엉망인데 사교육에만 잘못된 원인을 돌리는 셈이죠."

현장의 목소리가 이런 가운데 그제 곽 위원장의 학원 교습 밤 10시 이후 금지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당정회의가 무기한 연기됐다는 뉴스가 들린다. 섣부른 정책임을 시인한 꼴이다.

학부모들은 누구나 자녀를 학원에 보내기가 부담스럽다. 이 어려운 시기에, 생계에 영향을 줄 정도로 수십~수백만원이 사교육비로 쓰이고 있는데 이게 보통 큰돈인가. 학원 공부하지 않고도 자녀를 훌륭한 사회인으로 키울 수 있는 공교육 정책, 이게 선행된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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