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는 죄가 없다
돼지는 죄가 없다
  • 안병권 기자
  • 승인 2009.05.03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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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안병권 부국장
안병권 부국장 <당진>

멕시코발 돼지인플루엔자가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달 30일 확산되고 있는 신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돼지 인플루엔자(swine flu)' 대신 '인플루엔자 A(H1N1)'로 명명했다. 인플루엔자A(H1N1)는 돼지가 아닌 인간에게서만 발견되는 바이러스로 돼지와의 접촉이 아닌 '인간 대 인간'의 접촉에 의해서만 전염되고 있다.

앞서 후쿠다 게이지 WHO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돼지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돼지로부터 사람이 감염된 증거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발병 초기 명칭을 놓고 혼란을 부채질한 것도 사실이다. 국제수역사무국은 '북미인플루엔자', 유럽연합은 '새로운 인플루엔자', 이스라엘은 '멕시코 인플루엔자 MI', 미국은 '인플루엔자 H1N1'로 분류했다. 정확한 병명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대처방안이 제각각인 데다, 그 실효성을 두고 전문가들의 견해가 엇갈린다.

이번 인플루엔자A로 인해 '타미플루'를 생산하는 막강한 서구 제약회사가 시선을 끈다. 타미플루는 지난 1996년 미국 제약회사 길리어드 사이언시스사에서 개발한 뒤, 로슈홀딩이 특허권을 오는 2016년까지 갖고 있다. 2004년 세계보건기구에서 유일하게 조류인플루엔자(H5N1) 치료제로 인정받아 인플루엔자A와 B의 치료제로 쓰이며, 1999년부터 미국·캐나다 등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2002년부터 유럽에서도 판매되기 시작했으나, 수요량에 비해 생산량이 턱없이 모자라 세계적인 공급 부족사태를 빚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로슈가 10년 동안 생산시설을 완전 가동하더라도 세계 인구가 복용할 타미플루의 20%밖에 생산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는 지적재산권자의 허락없이 강제로 특허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특허의 배타적 권리에 대한 '강제실시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압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

AI(조류독감)를 일으킨 H5N1 바이러스는 주로 새에게서 전염됐기 때문에 새와의 접촉을 막는 것이 중요했지만, 이번 변종 H1N1 바이러스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옮겨지고 있다.

돼지는 죄가 없다. 돼지독감이라 불린 것은 사람, 조류, 돼지 인플루엔자가 복합된 것으로, 이름만 '돼지'가 붙었을 따름이지 돼지 사이에 독감이 발생한 바는 없다. 돼지고기를 먹거나 돼지와 접촉한 사람이 독감에 걸린 것이 아니라 유행성 스페인 독감처럼 공기 중에 전염된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러시아·우크라이나, 마케도니아 등 15개국이 돼지 수입제한을 실시하고 있다.

각국은 물론 한국 양돈협회는 더 이상 '죄 없는 돼지'를 거론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가뜩이나 금겹살로 불리는 돼기고기값의 인상으로 소비위축이 염려되는 시점에 돼지독감 파동은 설상가상일 수밖에 없다.

양돈협회는 돼지고기를 먹고 독감에 걸리면 고액 보상할 계획을 발표하는 등 이번 파동이 돼지와 무관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정부가 뚜렷한 대책이 있으면 양돈농가들이 위축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정부가 미온적인 대처로 국내 양돈업이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될까 우려된다.

일단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자리를 줄이는 것은 인플루엔자 확산을 막는 데 효과가 있다. 전염병 전문가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부르는 예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변종 바이러스의 움직임을 최대한 빨리, 정확한 판단과 구체적인 예방책이 나오지 않는 한 피해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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