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어김없이'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4.3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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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문종극 편집국장
문종극 편집국장

국민들은 또 봤다. 매번 얼추 시기도 비슷하다. 권좌에서 내려온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국민들은 본다. 이제는 '어김없이'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정권교체 후 1년 정도가 지나면 권력형 비리가 드러난다. 권력형이어서 그런지 권좌를 지키고 있을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니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 들춰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맞다.

박연차 회장 문제가 터질 때 국민들은 이미 알았다. 칼끝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하는 것이며, 그 끝도 노 전 대통령이라는 것을 정치판을 읽는 수준이 높아진 국민들은 알았다. 국민들의 판단은 빗나가지 않았다.

'어김없이'라는 전례에 대입하면 간단하게 읽어낼 수 있는 시나리오이기는 하지만 국민들은 아주 간단하게 맞혔다.

이처럼 똑똑한 국민들은 검찰이 권력 밑에 숨어 있는 권력형 비리를 알고도 모른 체 했는지, 아니면 권력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어 접근하지 못했는지도 안다. 그러다가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일정시간이 흐르면 야단법석을 떨 것도 예상할 줄 안다.

역대 대통령들과 그 가족들의 비리가 터져나와 온 나라를 뒤흔들곤한 전례를 보면 그렇다.

정권교체 시마다 되풀이돼 온 '어김없이'에 노 전 대통령도 비껴가지 못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3번째로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부끄러운 대통령으로 남게 됐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조사는 전·노 전 대통령부터 시작됐다. 지난 95년 5월 12·12쿠데타 및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서다. 당시에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이 정국을 뒤흔들면서 12·12쿠데타 및 5·18민주화운동 특별법이 만들어졌으며, 이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검찰조사를 받은 뒤 구속 기소된다.

이들 두 전직 대통령은 97년 12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간 합의가 이뤄지면서 사면을 받는다. 지금까지도 전 전 대통령은 2205억원, 노 전 대통령은 2628억원의 추징금 대부분이 미납된 상태다. 그럼에도 건재한다.

검찰소환을 가족까지 확대해 보면 권력형 비리로 아들이 구속된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명예롭게 퇴임하지 못한다는 부끄러운 역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직전 대통령인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들의 뒤를 이었다. 그것도 '어김없이'.

노 전 대통령은 전·노 전 대통령의 소환과 비교해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명예롭지 못한 행보라는 점에서는 차이라는 의미가 없다.

어제 대검으로 출발하는 노 전 대통령을 배웅하던 노사모 회원들이 "과거 전직 대통령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깨끗하다"고 주장했다.

맞다. 검찰이 내놓은 혐의를 보면 전·노 전 대통령과 비교한다는 자체가 우습다. 그러나 검찰에 소환된 역대 대통령 중 한 명이 됐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는 차라리 유구무언이 낫다.

유무죄 여부에 대해서는 검찰이 밝힐 일이다. 그것에는 관심도 없다. 단지 깨끗한 대통령을 수없이 외쳤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어김없이' 걸려들었다는데 관심이 있을 뿐이다.

권력형 비리가 정권교체 후에야 드러나고 법썩을 떨어야 하는 것인지, 왜 정권교체 자체가 권력형 비리의 정수기 역할이 되고 있는지가 불만이다.

다시 말해 권력자가 권좌에 있을 때에도 비리탐색이 가능하고 검찰소환이 가능한 그야말로 민주주의 법질서 정립은 요원한 것인가라는 문제다.

노 전 대통령의 검찰소환을 지켜본 국민들은 몇년후 이명박 대통령은 어떨까. 그도 정권에서 물러난 후 '어김없이'에 걸릴까 라는 생각을 해 볼 것이다.

'어김없이'를 비껴가기 위해서는 큰 정치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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