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관 임명 방식부터 바꿔보자
비서관 임명 방식부터 바꿔보자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4.3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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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혁두 부국장
권혁두 부국장 <영동>

봉하마을서 대검찰청으로 이어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난 30일 일정은 국민들에게 충격과 치욕을 넘어 자괴로 다가왔다. 쿠데타나 내란이 횡행하는 후진 독재국가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이 세계 10대 경제부국으로 도약했다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목도됐으니 눈을 감고 싶은 국민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전두환과 노태우라는 두 명의 반면교사(反面敎師)를 통해 부패한 권력이 국가에 어떤 생채기를 남기는지 뼈저린 역사를 경험한 바 있다. 그런데도 왜 이런 수치스러운 역사가 되풀이되는가.

영국의 역사학자 엑튼이 했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스스로 가장 경쟁력 있는 덕목으로 '도덕성'을 꼽았던 정권이 국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서 인지 이 말의 울림이 더 크게 느껴진다. 결론은 대통령이 절대권력을 누리는 대한민국의 현 통치구도에서는 권력의 부패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소불위의 대통령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 유일한 처방이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청와대에 구축되는 인적 네트워크가 대통령의 개인적 연고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이 큰 문제다. 이번 게이트의 핵심으로 꼽히는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과 동향에다 함께 암자에서 고시 공부를 했던 '죽마고우'이다. 노 전 대통령은 그를 4급인 서울시 감사담당관에서 세 단계나 건너뛴 1급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 발탁했다. 대통령의 지기인 데다 예산까지 관장하다 보니 직제상 상관인 수석은 물론 비서실장도 예산이 필요하면 그와 먼저 상의해야 했다고 한다.

정 전 비서관 외에도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에는 사석에서 대통령과 '호형호제'했던 인물들이 대거 진입했다. 여기서 싹트는 것이 이른바 패밀리 의식이다. 사적 인연들이 조직을 장악하면 공적인 절차는 무시되고 의리와 패밀리의 보호가 우선이 된다. 박연차 회장도 일찌감치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덕분에 패밀리의 일원이 됐다. 실제로 노건평씨는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에게 박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 무마를 청탁하며 그를 '패밀리'라고 언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패밀리 안에서는 박 회장이 뿌린 돈은 넉넉한 형이 형편이 덜한 형제에게 베푼 호의일 뿐이다. 가족끼리 주고받은 것인 만큼 받고도 죄의식이 있을 리 없다. 정 전 비서관이 청와대 예산(대통령 특수활동비)을 빼돌려 별도의 차명계좌로 관리한 것도 공인의식보다 패밀리 의식이 우선됐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이 정 전 비서관에 앞서 기용했던 최도술 총무비서관 역시 노통의 변호사 시절 사무장을 맡는 등 오랫동안 고락을 같이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SK그룹에서 11억원 상당의 양도성예금증서(CD)를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그에게 대통령과의 돈독한 사적 인연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감히 그런 돈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고, 대기업에서 로비대상으로 삼지도 않았을 것이다.

차제에 총무비서관은 물론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는 민정수석 등은 일정한 자격을 정한 후 외부에서 추천을 받아 임명하는 방안이 어떨까 제안해 본다. 이명박 대통령도 사촌 처형이 돈 공천에 연루되는 사단을 겪은 후 민정수석실 직원을 3명에서 6명으로 늘렸으나 인원이 문제가 아니다. 친인척의 문제를 제대로 대통령에게 직언하고 엄정하게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우선돼야 한다. 측근 기용을 외부에 의존하는 것이 대통령의 위신에 흠이 된다면 비서실 밖에 별도의 친인척 감시부서를 설치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그것도 어려우면 주요 비서관들에 대해서는 인사청문회라도 열어 최고 통수권자를 제대로 보좌할 만한 적임자인지 검증 절차를 밟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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