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회복 곡선 'V자형'은 아니다
경기회복 곡선 'V자형'은 아니다
  • 남경훈 기자
  • 승인 2009.04.28 2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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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남경훈 경제부장
남경훈 경제부장

요즘 경제 각 분야를 돌아다니면서 기자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경제가 회복되긴 되는 것이냐"이다.

2~3개월 전 "죽겠다"던 인삿말과는 온도차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 체감은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경기 회복에 대한 낙관론에 경제주체들이 어느새 편승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도 된다.

이런 배경에는 우선 금융부문이 위기에서 벗어난 듯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3월 초 1000 초반까지 밀렸던 코스피가 1300대에서 오르내리고 있고, 달러당 1600원까지 상승하며 국가 부도 염려를 낳았던 원화 환율 또한 1300원대 초·중반 수준에서 안정되고 있다.

실물경제 부문에서도 소비재 판매 하락세가 확실하게 둔해지고, 수출 금액 감소에도 불구하고 수출 물량은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한국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예상외로 큰 이익을 내면서 경기회복에 대한 가능성을 크게 높여 놨다.

호전된 경제지표를 바탕으로 경기회복에 대한 그래프 모형이 어떤 것일까를 놓고도 최근 들어 논쟁이 치열하다.

경기 그래프는 'V자형', 'U자형', 'W자형', 'L자형' 등 4가지가 있다. 'V자형'은 외환위기 직후의 우리나라처럼 경기가 급속히 나빠진 뒤 단기간에 회복하는 형태다. 이번 위기도 V자형이 됐으면 하는 바람은 팽배하다. 'U자형'은 서서히 나빠진 경기가 서서히 회복되는 형태다. 'W자형'은 회복되던 경기가 다시 가라앉았다가 회복되는 나쁜 상황이다. 더블딥(double dip)이다. 'L자형'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꼽히는 형태다. 경기가 침체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채 불황이 끝없이 이어지는 경우다.

여기에 최근의 상황에 잘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전문가들은 '나이키형', '바나나형', '욕조형' 같은 변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래프 모형까지 등장해 가면서 벌이는 경기회복론은 경제위기의 본질을 간과할 위험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 중 극단적인 형태인 V자형에 편승하거나 착시를 한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다.

이번 경기 침체는 단순히 선진국 주택가격 급락과 금융시장 붕괴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지난 수년간의 고위험·고차입 금융행태가 무너지는 동시에 세계 경제의 과잉투자와 과잉소비도 함께 축소되는 과정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파산과 인수·합병(M&A) 등으로 대표되는 주요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 되지 않고 있다. 각국 정부가 금융회사 손익계산서와 가계·기업 대차대조표의 붕괴를 가까스로 막고 있어 경착륙은 피했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많은 경제전망기관들이 의미 있는 회복세를 되찾는 데 2~3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이유다.

파이낸셜타임즈의 한 칼럼니스트는 이같은 변화에 대해 우려되는 것들을 다음 3가지로 압축했다. 첫째 이것이 진짜 터닝 포인트가 아니고, 단지 이번 위기에서 많이 경험했던 그런 변곡점(inflection points)의 하나에 불과할 수 있다. 둘째 경기 침체 그 자체는 끝났을 수 있지만, 일본처럼 경기 회복이 아닌 장기 경기침체(stagnation)가 뒤따를 수 있다. 셋째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정책 입안자들은 현재의 정책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충분하다고 오판(誤判)할 수 있다.

결국 경기회복에 대한 조급하고 섣부른 접근은 정책 입안자들을 오판하게 만들어 호황에 이어 10년간의 침체를 겪어야 했던 90년대 일본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현상은 숫자와 그래프로 쉽게 표현되지만 이를 해석하고 전망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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