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물철의 간 큰 공고, 간 부은 사람들
산나물철의 간 큰 공고, 간 부은 사람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4.27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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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기자의 생태풍자
김성식 생태전문기자
김성식 생태전문기자 <프리랜서>

"산나물산행 공지. 산행지-경기도 적성(이름모르는 산). 산행일시-5월 9일 토요일, 시간·만남 장소 추후 공지. 회비-계산중." 국내 모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있는 한 공지사항이다. 내용은 산나물 철을 맞아 함께 산나물 뜯으러 가자는 회원모집 공고다. 이 사이트에는 현재 이것 외에도 여러 팀의 산나물산행 공지가 올라와 있다. 다른 포털사이트도 마찬가지다. 두릅, 취나물 등 특정 나물을 뜯으러 가자는 팀들도 있다. 심지어 나물 뜯은 후 삼겹살 파티와 옻나무백숙을 즐기자는 문구도 보인다.

산나물이 웰빙시대의 건강식품으로 각광받으면서 산나물산행이 하나의 테마여행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는 새 풍속도다. 산나물 트레킹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산나물을 뜯으러 간다는데 조금도 시비 걸 생각은 없다. 다만 요즘 돌아가는 세상물정을 좀 알고나 공지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한마디로 이 공지는 '간 큰 호객행위'요, 이 글을 게재한 사람들은 '간이 부은 사람들'이다.

현행법상 산나물을 포함한 임산물의 굴·채취는 산림소유자의 동의를 얻어야만 가능하다. 즉, 본인소유의 산림내에서는 임의채취가 가능하나 타인소유의 산림에서는 산주 동의없이 굴·채취하면 모두 범법행위다. 위반시는 산림절도죄에 해당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산림법 116조,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73조)

얼마나 센 법조항인가. 혹자는 그깟 산나물 좀 뜯었다고 절도죄를 뒤집어씌워 중죄인 취급한다니 너무한 게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 보자. 오죽하면 그런 법조항을 만들었겠는가. 함부로 산에 들어가지 말라고 곳곳에 입산금지 푯말을 붙여놔도 "너는 짖어라"며 안중에도 없어한다. 산나물을 뜯는 것도 그렇다. 정도껏만 뜯으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마치 선수권대회라도 여는 양 여기저기서 혈안이다. 한 번 간 곳은 두 번 다신 안 갈 것처럼 쑥대밭을 만들어 놓는다. 원추리, 우산나물, 다래순, 더덕 등 남아나는 게 없다. 노루떼 멧돼지떼가 훑고 간 자리같다.

그러니 산주인인들 좋아할 리 없고 인근 주민인들 반길 리 만무다. 자연 시비도 잦다. 해서 이번엔 산림청과 지자체가 나서서 집중단속을 펼친단다. 특히 산림청은 동호회원을 모집해 관광버스 등을 동원한 무분별한 산나물 채취행위를 집중 단속하고 헛개나무와 엄나무 같은 약용수종과 산삼, 난초 같은 희귀식물의 굴·채취 행위도 경찰과 함께 단속한단다.

이런 와중에 "산나물 캐러 가자"고 대놓고 선전하는데 그 어찌 '간 큰 호객, 간 부은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인터넷상에 올라있는 공지사항 어느 곳에도 산주의 동의를 구했다는 문구는 보이질 않는다. 그러니 들키면 절도죄인 건 뻔한데 함께 가서 일 저지르잔다.

산나물은 이제 중요한 산림자원이다.

산나물이 지역특산물인 고장에서는 해마다 축제를 열어 지역경제를 살찌우는 중요 자원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또 산촌에 사는 주민들은 봄철엔 산나물 뜯어 여름 나고 가을엔 버섯 따서 겨울을 나는 소중한 생명줄이자 돈줄이기도 하다. 한데 재미삼아, 그것도 무슨 동호회다 거창한 이름까지 붙여가지고 떼지어서 도둑질(?) 하자며 부추기는 건 지나쳐도 보통 지나친 게 아닌가 싶다.

"이제나 저제나 벼르고 별러서 며칠 전엔 두릅순과 옻순을 따러 뒷산에 올라갔더니만, 젠장 두릅은 몽땅 낫으로 목을 쳐가고 옻나무는 아예 껍질까지 벗겨가 허탕치고 말았지 뭐요." 수십년을 속리산자락에서 두릅순과 옻순을 따다 장에 팔았다는 한 촌노의 푸념이 두릅가시에 손톱밑을 찔린 것만큼이나 찡하게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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