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나보나 광장
<174> 나보나 광장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4.2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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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덕의 오버 더 실크로드

역사·예술 손잡은 '관광 1번지'

옛 황제 경기장 터에 조성 … 길쭉한 타원형 모양 지녀

아녜제 성당·돌조각 분수 일품 … 거리 예술가도 밀집


실크로드 탐사의 마지막 날이라 홀가분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아쉽기도 했다.

광장에 들어서면 아고네의 성 아녜제 성당과 성당 앞에 오벨리스크를 받치고 있는 돌조각 분수가 매우 인상적으로 시야에 들어선다.

중국 여행에서 가장 힘들었던 15일에서 20일 사이가 지나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질 때까지 쉼 없이 강행군 하며 길을 나섰던 시간들은 되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지구의 심장을 한 바퀴 관통한 기분이다. 마치 전쟁터를 이동하는 듯한 탐사의 순간들이 어느새 생활처럼 익숙해졌고 이대로 일 년 정도는 더 답사를 다녀도 괜찮을 것 같은 자신감을 느끼게 했다.

여행은 어느새 내 몸에 맞는 옷처럼 매우 일상적이고 익숙해져 있다.

도로를 따라 전개되는 다양한 성당과 건축물들을 음미하면서 로마 광장중에서 가장 매력과 낭만이 넘치는 나보나 광장으로 향했다.

나보나 광장은 3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던 도미티아누스 황제 경기장 옛터에 만들어졌는데 남북으로 길게 뻗은 이 광장을 보면 도미티아누스 황제 경기장의 트랙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 광장은 원형경기장을 의미하는 치르코 아고날레라고 한때 불리기도 했다.

나보나 광장은 바로크시대의 걸작으로 '아고내(agone, 경기, 평지)'즉 바닥부분이 낮았던 광장에 인위적으로 물을 끌어들여 뱃놀이 했던 경기장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한다.

옛날부터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끼려는 사람들로 붐비던 광장이다. 17세기 중엽과 18세기에는 8월 주말에 이 광장에 물을 끌어들여 물놀이를 즐기기도 했던 곳이다.

광장에 들어서면 아고네의 성 아녜제 성당과 성당 앞에 오벨리스크를 받치고 있는 돌조각 분수가 매우 인상적으로 시야에 들어선다. 성당과 분수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는데 각각 로마의 바로크를 대표하는 보로미니와 베르니니의 대표작품들이다.

성 아녜제성당은 원래 성녀 아녜제가 순교한 곳에 세워졌던 것으로 전설에 의하면 성녀 아녜제는 처녀의 몸으로 순교를 당하기 전에 옷이 벗겨졌는데 기적적으로 머리카락이 갑자기 길게 자라나 몸을 감쌌다고 한다.
그녀가 순교한 이 장소는 도미티아누스 황제 경기장 주변에 있던 창녀 굴이었다. 팜필리 가문출신인 교황 인노센트 10세는 나보나 광장에 있는 그의 가문 건물인 팜필리궁을 더욱 위엄 있고 돋보이게 하기 위해 궁에 붙어있던 성 아녜제성당을 웅장하게 재건하기로 결심하였다.

1635년 성당 신축공사가 시작되었으나 교황은 작업을 의뢰한 건축가 라이날디의 작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해임하고 보로미니를 불러 들였다. 보로미니는 그리이스 십자형 평면으로 된 성당 내부보다 성당 외관을 더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그리하여 성당의 인상을 결정짓는 쿠폴라(돔)가 올려 졌는데 이 돔은 미켈란젤로식의 돔보다 더 날씬하고 더 위로 솟아 성당의 정면과 좌우의 종탑과도 완벽한 일체를 이루고 있다. 1657년에 완성된 이 성당의 외관은 후세 성당건축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며 중부유럽에도 전파되었다.

광장 중심부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늘어선 아름다운 가로등과 조각 분수대들은 연인들이 함께 추억과 낭만을 간직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고색창연한 성당과 궁들이 늘어선 광장에 가로등불빛이 들어오면 거리는 어느 낯선 세계에 들어선 것 같은 환상에 젖게 된다.

추억과 연인들의 거리인 나보나 광장의 명물 중에 하나가 광장을 장식하는 분수이다.

원래 1575년 델라 포르타가 설계한 분수는 취소되고 1651년 베르니니가 분수설계를 위임받았다. 그리하여 나보나 광장중앙에 베르니니의 걸작 4대강의 분수가 만들어졌다.

이 분수는 유럽의 다뉴브강, 아프리카의 나일강, 아시아의 갠지스강, 아메리카 대륙의 플라타강을 의인화한 돌조각들이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또한 동굴이 있는 바위덩이 위에 올려진 막센티우스 경기장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와 유연한 물의 흐름으로 구성되어 아름다운 효과를 자아내고 있다.

광장중앙에 건설된 베르니니의 돌조각 분수에서 관광객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 실망감서 극적 감동 연출

홍보의 대가 조각가 베르니니

분수 제막식때 최고의 쇼 선봬


홍보의 대가인 조각가 베르니니와 나보나 광장 분수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바로크 역사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베르니니가 명성을 드날리고 있을 때 넓은 나보나 광장 한가운데 커다란 분수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교황 이노센트 10세는 베르니니의 화려한 생활과 성공에 그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맡길 수밖에 없었다.

베르니니는 충분히 이 일을 소화해 낼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전형적인 로마인의 특징을 드러낸 네 인물상은 세상의 주요 강 네 군데를 상징하게 되었다. 사자가 은신하는 동굴이 조성되었고 중심부에 오벨리스크가 세워졌다. 또 전체적인 구성은 물이 용솟음칠 때 한데 모이도록 안배하였다.

시간에 맞춰 제막식에 참석한 교황의 일장 연설이 끝나고 음악이 연주되고 기도문이 낭송되었다. 베르니니는 물이 흐르게 하라는 신호를 보냈으나 웬일인지 물이 흐르지 않았다. 교황의 표정은 그것 보라는 듯이 바뀌었고 추기경들은 오만한 표정으로 변했다. 참석한 예술가들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망신창이가 된 베르니니는 머리를 떨구고 퇴장하는 행렬 뒤를 따랐다.

순간 일꾼 하나가 큰 소리를 질렀다. 물소리가 세차게 들렸다. 백 개의 작은 구멍에서 물이 분출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실망감에서 극적인 감동을 연출한 베르니니의 치밀한 이벤트는 자신의 인생 일대의 최고의 쇼를 연출해 낸 것이다. 자신의 타고난 천재성 못지않게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뛰어난 선전능력을 동시에 갖춘 바로크 예술의 거장 베르니니는 궁전 같은 저택에 살며 마차와 말을 소유하고 한 떼의 시종을 거느리며 마음껏 돈을 써가며 자신의 성공을 누린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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