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 MEMORY
SUPER MEMORY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4.23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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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이 한 장의 사진을 보라.

어느 봄날, 상당산성 절박한 내리막길에서 80은 족히 넘었을 노부부의 힘겨운 하산을 봤다.
위태로운 모습으로 조심조심 산길을 내려가는 노부부의 모습은 봄 햇살보다 훨씬 찬란했다.
그리고 남편의 등에 처연하게 얹힌 배낭에 써 있는 글귀, SUPER MEMORY.


아! 힘겹게 마주잡은 노부부의 손끝엔 얼마나 많은 추억과 얼마나 커다란 인생역정이 그려져 있는 것인가.
할머니의 주름치마와 모자에 감춰진 할아버지의 백발에서 인생의 아름다움은 그지없기만 하다.
하여 그때의 찬란한 감동을 부끄러운 운율로 엮어 본다.

산성에서

SUPER MEMORY.
경박한 문자에서 경건함을 보다

상당산성 비탈진 내리막길에서
위태해 보이는 노부부의
맞잡은 손
그 끝자락엔 분명 기막힌 추억이
송알송알 걸려있을 테고

천년을 버텨 온 성벽
풀풀이 날리는 흙먼지에도
사연은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을 테니

누구일까
저 먼 인생의 길을 휘돌아
이제는 용서만이 남아 있을
산모퉁이 노년에게

S·U·P·E·R
M·E·M·O·R·Y.

그 기막힌 문자의 희롱으로
마주잡은 손에 힘을 더하게 하는
치열함

살아 있음이 살아 온 날들보다
더 가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상당산성
가파른 내리막길
역사는 까마귀 날갯짓만큼
부질없는데
노부부의 찬란한 추억으로
하염없이
봄, 날은 간다.

누구는 나를 버려달라고 하소연하고, 누구는 (탈당을 해서라도)기어코 정치를 하겠다며 용을 쓰고 있다.
그런 욕심은 노부부의 맞잡은 손과 배낭에 쓰인 SUPER MEMORY에 비하면 얼마나 초라한 것인가.
그리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황혼은, 그리고 그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사진은 어쩌면 말보다 훨씬 직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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