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인가 '염장 지르기'인가
'대안'인가 '염장 지르기'인가
  • 권혁두 기자
  • 승인 2009.04.21 2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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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혁두 부국장 <영동>

지난 대선 때 한 후보가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때 제시된 대안이 환상적이었다. 세종시를 교육특구로 지정해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 주요 대학 3개를 유치하고 외국 유수 대학도 2개를 유치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가 낙선함으로써 서울대를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그의 묘수를 구경할 기회도 없어졌다. 물론 그가 당선됐더라도 이 공약은 유권자들을 우롱한 한낱 말장난으로 끝났을 터였다.

지방대학들이 고사 직전에 놓인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살길은 '서울이나 수도권으로의 이전'이지만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다. 실제로 캠퍼스 이전을 시도했다가 좌절한 대학들이 적지않다. 이런 마당에 서울에 소재한 대학이 지방으로 내려온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현실성 제로의 대안은 듣는 이들의 짜증을 돋울 뿐이다.

세종시에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사생결단을 벌이고 있는 김문수 경기지사라고 해서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종시가 실속없는 관청만 모아놓은 행정도시로 갈 것이 아니라 기업형 도시로 가야한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울산을 예로 들며 '울산이 전국 1위의 도시가 된 것은 정부기관을 유치해서가 아니라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등 굴지의 기업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행복도시 땅을 공짜로 제공하고 좋은 학교를 짓는 등 양질의 주거환경을 갖추면 세계 100대 기업도 유치할 수 있다고 방법론까지 제시한다. 마치 행복도시가 행정도시를 포기하고 기업도시로 방향을 바꾸면 수원의 삼성전자라도 내려보낼 태세다. 그러나 이 말에 신뢰를 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김 지사 스스로도 이 말을 뱉어놓고 실소를 머금었을지 모를 일이다.

더욱이 김 지사는 수도권 규제완화를 위해 선봉에 서왔던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뜻을 관철해내고 지방에 땅을 사놓고 이전을 준비하던 수도권 기업들의 '유턴현상'까지 초래했다. 기업의 수도권 집중화를 주도했던 그가 행복도시는 기업도시로 가야한다는 논리를 펴며 세계 100대 기업까지 들먹이는 것은 소도 웃을 일이다. 지난 2007년 하이닉스반도체 이천공장 증설사업 유치를 놓고 청주시와 이천시가 대립했을 때 그가 보인 행태도 마찬가지다. 이천시민들의 삭발투쟁을 진두지휘하며 청주 이전을 추진하던 정부를 압박했던 그였다. 행복도시가 기업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수도권에 둥지를 틀고 있는 몇몇 대기업들의 이전이 전제돼야 한다. 예컨대 김 지사가 거명했던 울산의 현대자동차나 현대중공업 수준의 기업들 말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김 지사가 수도권 규제를 확 풀어버린 현재는 꿈도 못 꿀 일이 됐다.

지자체들마다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음을 김 지사가 모를 리 없다. 빠듯한 재정을 헐어 서울에 사무실을 내고 이전기업을 수소문하는 지자체가 있는가 하면 각종 세제와 융자혜택은 물론 미리 공단을 만들어 놓고 기업만 들어오면 헐값에 제공하겠다는 지자체들이 대부분이다. 기업만 들어오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겠다는 자세다. 그런데도 지방을 선택하는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몇년 전 충북에서는 수도권 지자체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던 군 교육시설 유치를 놓고 이웃사촌끼리 치열한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지역경제에 보탬이 된다면 군사시설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이 지방의 현실이다. 거기에 대고 공짜로 땅 주고 학교 지어 세계 100대 기업을 유치하라고 훈수를 두는 것은 뺨을 맞을 일이다.

김 지사께 바란다. 대안이랍시고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충청도 사람들 염장지르지 말고 '물 한 방울도 지방에 내려보낼 수 없다'고 터놓고 말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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