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드라마
범죄 드라마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4.1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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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겸의 안심세상 웰빙치안
김 중 겸 <경찰 이론과실무학회장·전 충남지방경찰청장>

사랑과 우정에 우리는 목말라 한다. 인간본성이 대저 선하기 때문이다. 본심은 늘 순수함을 추구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방이나 극장가에서의 흥행은 실패로 막을 내리곤 한다.

순정만으로는 인기를 모으기 힘들다. 배신과 배덕이 동행해야 시청률이 올라간다. 관객이 몰린다. 삼각 사각의 불륜이어야 시선 떼지 못한다. 복수와 파멸 앞에서 자리 뜨지 못한다.

연장선상에 범죄를 주제로 한 영상물이 있다. 만화나 게임 소재로도 널리 애용된다. 어느 나라 어느 연령대건 좋아한다. 치안상태 양호여부 불문의 공통현상이다.

일견 모순인 듯하다. 살기 좋으면 범죄가 적다. 따라서 관심도 없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 않다. 대중사회의 성립과 더불어 일상생활 속 흥미의 대상이 됐다.

일반인도 글자를 읽고 쓰기가 가능해졌다. 책 보는 사람이 늘자 미디어의 테마로 폭력과 섹스가 등장했다. 19세기부터 범죄소설이 범람했다. 극장에서는 매일 범죄물이 상영됐다.

물론 그 이전에도 존재했다. 동서양 신화의 대부분은 전쟁과 살인과 애정행각이 차지한다. 향유자는 일부에 그쳤다. 왕과 귀족과 성직자의 전유물이었으나 인간 영원의 호기심 발로다.

왜 좋아할까. 사람은 누구나 그 내면에 숨기는 본능이 있다. 바로 성 충동과 공격성이다. 억제하고 있을 따름이다. 평화로운 시민생활을 위하여 윤리도덕과 법이 이를 규제한다.

우리는 이 억압당하고 있는 본능을 보거나 들음으로써 해소한다. 억눌린 충동을 읽음으로써 발산한다. 주체하기 힘든 내 안의 악의 뿌리를 타인의 행동을 통하여 뽑아낸다.

대리만족이다.

실제로 행동하는 대신에 주인공과 나를 일체화시킨다. 살인자와 도둑놈과 강간범과 난봉꾼의 행위를 통하여 체험을 공유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카타르시스가 이루어진다.

나아가 악의 상징 안티(anti-hero or heroin)와 자신을 이질화시킨다. 동시에 내가 형사와 탐정의 입장이 된다. 동일화다. 악은 징벌당하고 선은 옹호된다는 사실을 재삼 학습한다.

물론 모방범죄도 있다. 극소수다. 결국 잡힌다. 이렇게 해서 우리사회는 우리 손으로 안전을 구축해 나간다. 힘든 삶에 따듯한 인정 전해주는 스토리는 안심증진의 샘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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