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인도의 전통사상과 불교·자이나 종교관
<171> 인도의 전통사상과 불교·자이나 종교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4.0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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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덕의 오버 더 실크로드
권위주의적 브라마니즘에 반발 자유사상 확산

자이나교·불교 평등적 윤리 강조


사리바롤에서 출토되어 파키스탄 페샤와르 박물관에 소장된 불상.
형식주의와 지나치게 교조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브라마니즘은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신분제도는 사회 침체와 발전을 막는 요인이 되었다. 이에 브라만 계급의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자유 사상적 종교 운동이 일어났다. 이것이 바르다마나가 대성한 자이나교와 석가모니가 일으킨 불교이다.

자이나교와 불교는 브라마니즘의 제례의식과 이에 따르는 브라만들의 권위와 특권을 인정하지 않고 평등주의적 윤리관을 내세웠다.

자이나교는 철저하고 극심한 고행에 의한 구제의 길을 걸었고 상대주의를 주장한 반면 불교는 온건하고 상식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중도'에서 길을 찾았던 것이다.

불타가 생각하기에는 극단적인 고행도 감각에 얽매이는 태도와 마찬가지로 결코 바른 길일 수 없었다.

마하비라가 창시한 자이나교도 처음에는 브라만이 주장하는 교리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것이었다.

마하비라는 처음부터 극단적인 고행을 했다. 출가 때 입고 나간 얇은 옷 한 벌마저도 13개월 후에는 불쌍한 사람에게 주어버리고 그 후로는 벌거벗고 고행생활을 했다.

12년에 걸친 고행 끝에 완전한 지혜를 깨달아 자이나가 되었고 마하비라로서의 명성과 많은 신자를 얻고 30여 년간의 포교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다.

자이나교의 최고의 소망은 단식에 의해 죽는 것이다. 이것은 마하비라 자신이 선택한 죽음의 방법으로 그는 72세에 단식을 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재 자이나교는 서인도와 서남인도의 상인과 부호들 사이에 많은 신도들을 가지고 있다.

간디의 무저항주의나 단식수양, 동물애호, 채식주의 등 자이나교의 교의가 인도인의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있다.

신분제도의 차이를 인정하는 브라마니즘과는 달리 자이나교와 불교는 계급차별을 배격한 그 당시 인도사회의 급진적이고 이단적인 종교였다.

불교, 인도서 쇠퇴 … 전세계로 전파

불교는 만민평등의 보편적인 진리로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으나, 힌두교는 인간의 계급차별을 인정하는 브라마니즘으로 인해 인도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반면에 불타는 인도를 대표하는 비슈누신의 아홉 번째 화신으로 추앙받는 힌두 신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브라마니즘에 반대하여 베다를 존중하지 아니하고 고행과 희생을 경시하였던 불교는 결국 인도에서 사회성을 잃고 쇠퇴의 길을 걷고 소멸된 반면 국경을 넘어 각 나라의 민간신앙을 흡수하면서 불교는 아시아 각 지역으로 전파되어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하였다.

자이나교, 인도 영역서만 명맥 유지

반면에 자이나교는 인도적 성격을 지키므로 인도의 영역에서는 그 독자적인 명맥을 유지했지만 국경을 넘지 못한 대조적인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윤회와 업(카르마) 사상은 불교 고유의 사상이라기보다는 그 당시 인도인들의 사상을 지배하였던 보편적인 생각을 계급철폐와 만민평등의 자비사상을 민중들에게 설파한 불타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 체계화되고 보편적인 진리로 인정받음으로써 세계적인 종교로서의 지지기반을 얻게 되었다.

자기구원과 해탈의 종교로서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함으로써 인도 밖의 다른 세계에서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종교로 전파될 수 있었다.


인간의 모습 신격화

그리스인 간다라 지방서 정착

불타의 모습 구체적 표현나서

후에 기독교도와 이슬람으로부터 우상숭배의 배격대상이 된 불상과 회화도 불타를 따르던 제자들이나 불타의 의사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탄생 (2세기 간다라 출토)

초기 불교도들은 부처를 너무 숭배하고 사모한 나머지 감히 인간 형체의 불상을 만들지 못하고 단지 발자국 혹은 빈 좌석 등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간다라 지방에 정착한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육체나 정신과 다를 바 없는 속성을 신들에 부여해 신상(神像)을 제작하여 숭상하고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나 아폴로 신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하여 조각한 고대 그리스 조각상들처럼 이 지역을 대표하는 불타의 모습을 구체적인 형태인 조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신기하
관수(2세기 마르탄 출토)
고 기이한 현상을 목격한 불교도들은 그들의 영향으로 불상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무형적인 불교정신이 그리스식 조각으로 말미암아 유형적인 예배대상을 갖추게 되었으며 불교전도의 주역으로 등장하던 석존상(釋尊像)이 점차 독립된 예배상인 불상으로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석존의 모습에서 초인간적인 존재로서의 특성을 상징적. 조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특별한 형상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약속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약속이 바로 석존의 32상(相) 82종호(種好)이다.

간다라 미술은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의 동정(東征)을 계기로 기원전후 수세기 동안 현재 파키스탄 북서부의 페샤와르를 중심으로 한 간다라 지방에 정착한 박트리아계 그리스인들의 그리스 문화와 토착 인도 불교문화가 만나서 생긴 일종의 융화현상이다.

간다라 미술의 특징은 기법에서의 섬세함과 현실성이다. 전래의 인도 조각이 단순한 웅장함과 정신적인 표현만을 추구했던 반면에 간다라 조각은 인체를 아주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하면서 현실감을 살려냈다.

그리하여 조각을 비롯한 간다라 미술에서는 예술성을 각별히 중시하는데 이것은 그 발달과 전파를 추진하는 원천이면서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이렇게 탄생한 간다라 미술은 헬레니즘 미술의 양식과 수법으로 불교의 주제를 표현한 조각 위주의 미술로 주로 불상조각 외에도 불탑을 위시한 건축과 회화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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