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실크로드를 통해 전파된 종교들
<170>실크로드를 통해 전파된 종교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3.30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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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덕의 오버 더 실크로드
사막이 문명에게 길을 내어주다

마니교, 3세기 초 조로아스터교 등 박해 피해 이동
문물·예술 교류 비롯 종교 등 정신적 교류도 활발

불교+기독교 등 혼합 마니교 탄생


마니교의 미술. 마니교 경전 필사본.
실크로드 상에 명멸하였던 종교 가운데 하나인 마니교(摩尼敎)도 3세기 초엽 페르시아 사람 마니를 교조로,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를 바탕으로 불교와 기독교의 교의(敎義)와 바빌로니아의 원시 신앙을 혼합하여 만든 일종의 자연종교이다.

실크로드 상에 교류가 존재했던 증거로 피터 홉커크(Peter Hopkik)의 실크로드의 외국인 악마들(Foreign Devils on the Silk Road)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독일인 탐험가 르콕과 바르투스는 1904년 11월 18일 중국령 투르판 동쪽 카라호자에 도착했다. 사막에 있는 진흙 벽으로 축성된 거대한 고대 도시 한가운데서 막 발견한 높이 180cm의 프레스코 벽화를 발견했는데, 광배(光背)가 휘황한 한 남성상이 시자들에 의해 에워싸여 있고, 그 인물은 마니교의 창시자인 마니를 그린 것이 틀림없었다.

이후 출토된 유물들을 보아도 8세기 중엽 카라호자(고
인도 브라만의 의식
대 명칭은 '코초')에서 마니교가 번영을 한 것은 명백했다. 기이하고 금욕적인 이 종교는 그 시기보다 약 5세기 전에 페르시아에서 마니에 의해 창시되었다.

마니는 이단적인 사상 때문에 기독교도, 무슬림, 조로아스터교 등 다른 종교 신봉자들에게 격렬한 적개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마침내 조로아스터교의 승려들과 논쟁에서 패배하자 이단자로 찍혀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중근동과 발칸 지역에서 마니교 신앙은 잔인한 박해를 받고 거의 뿌리가 뽑혔으며, 그 결과 마니교에 관한 기록이나 종교 문헌도 이 지역에서는 자취를 감춰버리게 되었다.

교도 500명 카라호자까지 도주

그때 박해를 피해 약 500명의 마니교도가 동쪽으로 사마르칸트(우즈베키스탄의 역사 도시)까지 도주해 왔다. 피난지인 그곳에서부터 마니교의 교의와 미술은 실크로드를 따라 점점 동방으로 이동해 갔으며, 그 과정에서 불교의 영향을 흡수하며 카라호자까지 도달했다.

종교의 흥망과 변천에 있어 실크로드를 통해 수많은 문물과 문화의 전달 못지않게 종교적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인류 정신문명의 발상지인 인도에 나타난 여러 종교의 근거는 대체로 베다 시대에 형성되었으며 자연숭배의 한 형태로 출발하였다. 초기 베다 시대의 신들은 하늘, 땅, 물, 불, 바람, 해, 번개 등 자연이나 자연현상의 위력을 인격화한 자연신이었으나 신화가 발달해 감에 따라 미래 신화나 세계 신화의 양상이 가미되어 다채롭게 변천해 갔다. 베다 시대 신화의 중요한 특징은 주로 남성적인 신들이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브라만교 1200년경 라그베다 편찬

브라만교는 1200년경 추정되는 인도에서 편찬한 가장 오래된 문헌인 리그베다 경전을 편찬하였다. 고대 사회에서 희생물을 바치는 것은 아리아족에게 가장 신성한 종교의식이었다. 가족단위로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 부족이 대규모로 희생물을 바치기도 하였다. 모든 종교적인 의식이나 기원은 제사를 통해서만 행해진다.

베다는 이들 신을 제례의식을 통해 불러내기 위해서 소리 높이 노래한 주문이기도 하며 브라만은 그 제관이자 주술사였다. 따라서 신들의 지위가 어느새 주술사의 권위로 자연스럽게 바뀌어 갔다.

리그베다가 만들어진 이후 인도의 철학자들은 그 주석서를 만들기 시작하여 수백 년 동안 이에 주력하였다.

거기에서 나온 작품 가운데 최후의 가장 중요한 작품은 철학적 사고를 집대성한 것이다.

철학 등 집대성 우파니빨? 창시

기원전 700년부터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이 작품은 우파니빨?라 불리는데 여기에 담겨진 대부분의 중심사상은 자이나교와 불교의 창시자에게 많은 영향을 미침과 동시에 힌두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우파니빨?란 뜻은 '스승 가까이에 앉음', 즉 '궁극적인 지혜에 관한 토론'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것이 성립된 것은 인도에 문자가 보급되기 이전이어서 성자나 스승으로부터 '가까이에 앉는' 제자에게 신비스러운 지식이 구두로 전수되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파니빨?의 진리에 대한 탐구는 주로 대화의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추구하는 철학적 노력과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종교적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브라만은 우주의 본체 즉 우주의 근본 원리를 지칭한다.

브라만은 만물의 주제자로서 만물에 깃들어 있으면서도 특정한 형태나 크기, 혹은 속성을 제시하지 않는다.

반면에 자기의 주체는 아트만(我)인 것으로 파악된다. 아트만은 'at', 즉 '호흡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이다. 여기서 호흡, 숨이라는 의미가 '생기' 그리고 생기가 머무는 곳으로서의 신체를 의미하게 되었으며 다시 자기 자신을 의미하는 말로 발전하였다.

브라만이 모든 존재의 본질이라면 아트만은 개인 존재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브라만은 아트만과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여기서 비로소 유한의 개체가 영원으로 이어지는 길이 열릴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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