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급훈
이상한 급훈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3.2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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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철 <충북도교육청 학교정책과 장학사>
교장선생님께서 부르셨다. 다짜고짜 "김 선생은 정신이 있는 사람이요, 없는 사람이요"라고 화부터 내셨다.

화를 내시는 이유는 내가 급훈으로 제시한 내용 때문이었다. 졸업기념 사진첩에 학급별로 단체 사진 위에 학급의 급훈을 적도록 되어 있었는데 우리 반 급훈을 보시고 화가 나신 것이다.

장난 삼아 써 놓은 것으로 오해를 하신 것이다. '공부해서 남 주자'라고 써 있는 사진첩에 붉은 색으로 표시를 하시고 나를 부르신 것이다. 우리는 흔히 부모님으로부터 '공부해서 남 주는 것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공부가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자신과 가문을 빛내는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자식을 공부시켰고 공부는 성공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대학은 출세의 이정표로 인식되어 지금도 일류대학에 합격하면 현수막을 걸고 자랑하며, 신문과 방송에서 세칭 일류 대학 합격생의 수를 자랑스럽게 발표한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공부한 것을 남에게 주다니 그것은 정말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교장선생님께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자신만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남을 위해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이런 급훈을 정했노라'고, 그리고 '우리 반은 매월1번 이상 고아원을 방문해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노라'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은 공부해서 남 주는 것을 절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씀 드렸다. 처음에는 이상한 눈을 바라보시던 교장선생님께서 이야기를 다 듣고 나신 후 나의 손을 잡으시며 '그런 깊은 뜻이 있는 줄 모르고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정말 좋은 급훈이라고 오히려 칭찬을 해 주셨다.

이상한() 급훈을 반 아이들과의 첫 만남에서 교실 칠판에 크게 써주면 아이들도 한결같이 웃는다. 그런가 하면 힘들게 공부해서 남 줄 것을 왜 하느냐고 묻는 당돌한 아이들도 있다. 그럴 때 나는 이야기 한다. '의사가 자신을 수술하는 것 보았느냐'고 '이발사도 자기 머리 못 자르는 것'이라고 말이다.

돈도 벌어서 자기가 다 갖는 것 아니고, 건강도 자기만을 위해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고 나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이어서 거창하게 이 사회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사는 삶이야 말로 정말 멋지게 사는 것이라고 역사선생다운 말로 끝을 맺으면 아이들은 아무 소리 못하고 수긍하는 듯하다. 그리고 우리 반은 없는 시간이지만 시간을 나누고 건강을 나누는 봉사활동을 갈 것이라고 1년간의 봉사활동 계획을 발표하고 그대로 실시한다.

그 후 교장선생님은 봉사활동을 갈 때 교통비를 하라고 봉투를 주시기도 하시고, 여름에 더울 때는 아이들이 힘들게 활동한다고 하시면서 아이스크림을 사주시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셨다.

지금은 퇴직하시고 다른 지역에서 생활하시지만 지금도 가끔씩 전화를 하셔서 봉사활동을 가고 있는지 그때 그 제자들이 공부해서 남 주는 훌륭한 사람이 되었는지를 물어 오신다.

당신도 지금은 봉사활동을 하시면서 제2의 인생을 보람 있게 사신다고 말씀하시면서 '김 선생 정말 공부는 내가 갖는게 아니에요. 남 주는 것이 맞아요'라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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