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권 '학위장사' 후유증
동구권 '학위장사' 후유증
  • 한인섭 기자
  • 승인 2009.03.22 2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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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한인섭 정치부장

충북도립예술단 예술감독 겸 지휘자 선정 이후 제기된 논란과 파문 와중에 나온 화두의 '백미'(白眉)는 정부기관이나 자치단체가 '엉터리 학위'와 사회적 부조리를 조장해선 곤란하지 않냐는 '일갈'(一喝)이 아니었나 싶다. 의아한 1차 공모 무산과 담합소지가 컸다는 2차 공모심사, 처남매부로 밝혀진 주무과장, 정우택 지사 개인레슨, 소피아국립음악원 석사학위 진위까지 꼬리를 문 파문의 성격을 압축한 말이었다. 맑아진 공직사회에서 이번처럼 숱한 의혹과 상식을 뛰어넘는 일을 만들어내기도 쉽지않다. 지휘자와 사무직원 채용 공고를 냈던 지난 1월5일부터 오씨를 발표했던 지난 2월23일까지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 충북도청 사무실 한켠에선 의도한 결론을 만들어 내느라 적잖은 애로가 있었을 법하다. 선정자 발표 이후 제기된 논란에 대해 충북도가 보여준 태도는 '비상식으로 상식을 압도할 수 있다'는 또 하나의 나쁜 선례를 만든 점이다. 이 중심엔 정우택 지사와 도정 시스템이 있다는 점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번 결정을 '잘했다'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엉터리 학위'를 인정한다면 '누가 힘들여 공부하겠냐'며 충북경실련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준원 서원대 교수의 '일갈'은 꼽씹어 볼만하다. '학위를 줬다는 공문이 왔으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취한듯 반복 주장을 했던 충북도와 일을 주도했던 몇몇 이들이 마음 한켠으로라도 수용할지 여부는 별개로 치더라도 의미있는 말임에 분명하다. 도민과 문화예술계의 기대감을 낳았던 '문화선진도 구현'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첫 실행 사업이랄 수 있는 도립예술단 창단과 지휘자 선정은 이렇듯 '쉽게 얻은 것에 대한 비웃음·독선적 인사스타일'의 결과로 탄생했다는 혹평을 들을 수밖에 없게 됐다.

파문의 단초를 제공했던 요인의 하나였던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음악원 학위는 앞으로도 논란이 제기될 소지가 커 음악계나 관련당국이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옛 소련 붕괴와 동구권의 탈공산화 과정에서 '자본'에 눈을 뜬 동유럽 일부 국가의 대학들이 한때 '학위 장사'에 나섰던 일은 많은 후유증을 안겼다. 국내 음악계 인사들은 현지에 가지않아도 된다거나, 경제적 부담도 적은 점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 방법을 택했다. 쉽게 말해 돈과 학위를 바꾸는 행렬이 이어졌던 셈이다. 이런 결과로 현지 몇몇 대학교수들은 제법 돈을 벌었고, '몸값'도 올라 이젠 국내로 초청하기가 쉽지않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덕분에 국내 음악계는 여전히 '짝퉁'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그래도 양심적인 이들은 이번 논란의 핵심으로 작용했던 'MASTER CLASS'(단기연수)를 있는 그대로 표기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경력'으로 써먹었지 '학위'로 내세우지 않았다는 음악인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아이러니하게 명품 제조업체들은 '짝퉁'을 일정정도 즐긴다고 한다. 짝퉁이 돌아야 소비자들이 진품에 눈을 뜨기 때문이다. 그래서 짝퉁시장을 늘 체크하다 일정한 점유율이 초과되면 단속을 요청하곤 한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학위는 이와 달라 진위확인도 중요하지만 평가는 더 중요하다. 당사자들의 양심도 그렇다. 하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특정인이 지닌 자격을 중심으로 꿰맞추다 보니 '지휘 석사학위'에 '교수 겸직 배제' 등 조건을 붙였던 탓도 컸다. 자격이나 조건이 모두 '땅 짚고 헤엄치기식'이었지만 결국은 당사자들을 옥죄는'덫'으로 작용했다. 예술단 지휘자가 지닌 비중에 비해 큰 이슈가 됐던 것은 일련의 일을 만들어낸 '부조리한 구조' 때문이었다. '제 장단에 제가 넘어가는 꼴'을 만들며 일을 키웠고, 자진사퇴 주장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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