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실
정실
  • 문종극 기자
  • 승인 2009.03.1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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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문종극 편집국장

'사사로운 정이나 관계에 이끌리는 일'로 풀이되는 정실(情實)이라는 단어는 현대사회에서도 꽤나 여러 형태로 사용된다. 정실인사, 정실행정, 정실자본주의 등 그러나 하나같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미국에서 처음 도입한 인사행정으로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모든 관직을 전리품처럼 이용하는 엽관주의(Spoils Systems)와 비슷하게 통용되는 정실주의는 영국에서 발달한 것이다.

정실주의는 어떤 사람을 공직에 임용하는 데 그 기준을 그가 지니고 있는 자격과 능력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인사권자와의 혈연·지연·학연·정당관계 등 귀속적인 기준에 두는 것을 말한다.

이는 영국이 1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인사행정에 이용했던 시스템이다. 영국의 정실주의에는 두 가지 경향이 있었다. 그 하나는 국왕에 의한 은혜적 정실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내각책임제의 발달 이후에 등장한 의회의 유력한 정치가에 의한 정치적 정실주의였다.

은혜적 정실주의는 국왕이 총애하는 신하에게 공직을 부여하거나 반항적인 의회를 길들이기 위해 자기편의 의원에게 고위직이나 고액의 연금 등의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은혜적 정실주의는 명예혁명 이후 시민권이 성장하고 국왕에 대한 의회의 우월성이 도드라지면서 도전을 받기 시작한 이후 세월이 흐른 지금은 사라진 인사시스템이다.

하지만 시민권이 왕성하고 의회와 각종 단체 등 견제세력이 수없이 존재하는 현대사회에서도 정실주의는 폭넓게 퍼져 있다.

그중 하나가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다. 끼리끼리나 패거리 자본주의로 보면 된다. 이 용어는 서구에서 동양의 소위 '아시아적 가치'에 기반한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사용된 것이다. 지난 1990년대 이후 동아시아의 경제위기를 두고 서양 경제계 인물들이 비판을 하는 데 자주 사용한 용어다.

결국 정실자본주의도 혈연·지연·학연 또는 정경유착 등 일련의 집단주의적 특징을 보이는 경제활동을 말하는 것으로, 아시아의 계급사회 및 유교사회의 가치가 투영된 사회 경제상의 단면을 꼬집는 데 이용되고 있다. 이 역시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고 있다.

이와 함께 정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행정을 펴고 인사를 하는 정실행정과 정실인사가 있다. 우리가 자주 접하고 사용하는 용어다.

정실인사(情實人事)는 능력을 기준으로 직원을 채용하거나 승진과 전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인 관계와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특정인물을 채용 또는 승진, 발령하는 것을 말한다. 행정업무를 사적이거나 사사롭게 처리하는 것을 정실행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정실인사는 정실행정에 포함되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부정적인 용어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면 알 수 있는 '정실'을 놓고 그 역사와 배경 등에 대해 장황하게 얘기했다. 혹자는 뜬금없이 정실 타령이냐고도 할 수 있다. 아직도 이처럼 부정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정실'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를 하고도 비껴가려는 인사들이 많은 듯해 아까운 지면을 할애했다.

시민사회단체와 언론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절차와 자격을 충족(자의적이지만)시키고 있어 하자가 없으며, 정실인사도 아니라면서 위촉을 강행한 충북도립예술단 상임지휘자.

도지사가 같은 조건의 최종 후보 2명 중 1명을 상임지휘자로 낙점했고, 낙점한 그 후보가 자신의 색소폰 선생이라면 바로 그것이 '정실'이다. 이렇게 현대판 '정실'의 정의를 내려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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