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성 베드로 대성당
<168> 성 베드로 대성당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3.1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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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덕의 오버 더 실크로드
피렌체 공화궁의 행정부가 위치했던 시뇨리아 광장.
어둠속 한줄기 구원의 빛을 만나다

세계 최대규모 … 베드로 성인 무덤위에 지어져


바티칸 박물관을 나와 회랑을 지나 대성당 내부로 들어갔다. 대성당 내부로 들어갈 때는 슬리퍼를 신거나 짧은 바지 차림으로 들어가서는 경비원에게 퇴장을 당하게 된다. 성지에 들어갈 때는 최소한의 경건한 차림의 예의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대성당에는 다섯 개의 문이 있으며 첫 번째는 천국의 문으로 25년에 한 번 열리며 우측 끝의 성문은 대희년에만 열린다 한다.

옆문으로 들어가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웅장하고 넓은 홀이 나타난다. 벽면에 장식된 아름다운 문양과 그림들은 형형색색의 대리석을 모아 만든 것으로 돌의 아름다움과 그 다양한 색상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베드로 성당을 장식하고 있는 벽면 조각상.

대리석 조각도 다양한 색깔을 모자이크 하여 그림이나 다양한 문양으로 디자인 할 수 있다는 것을 이곳에서 처음 보게 되었다.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장중함과 화려한 기품을 갖고 있는 성당내부를 돌면서 과연 허명이 아님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조화와 기품을 잃지 않은 성당의 길이는 전장이 210m이며 돔의 높이는 136m로 세계에서 가장 큰 대성당이다.

1633년에 제작한 중앙의 거대한 덮개인 발다키노(천개)는 로마의 궁들만큼 높다. 둥근 돔 아래 화려하게 장식된 베르니니의 청동 천개(天蓋)는 판테온 천장을 덮었던 청동으로 만들어졌으며 나선형 모양의 원주가 받치고 있는 이 재단은 교황의 제단으로 베드로 성인 무덤 위에 설치되어 있다.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매우 친숙한 발다키노는 배배 꼬여 올라가는 청동 기둥이 받치고 있고 꼭대기에는 어린 천사들이 위태롭게 앉아 있다.

교황의 머리를 가리기 위한 엄숙한 구조가 꼭 기계처럼 보였기 때문에 관리자들을 거치면서 일명 '기계'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또한 반원형 난간에는 꺼지지 않는 99개의 등불이 베드로 성인의 무덤을 밝혀 주고 있다.

교황 알렉산드로 7세는 베르니니에게 이전에 베드로 대성당에 있던 나무옥좌를 바로크풍의 도금된 청동옥좌로 바꾸게 했다.

유일하게 미켈란젤로의 서명이 새겨진 '비탄'은 마리아의 품에 안겨 죽은 예수의 모습을 조각한 것으로, 숭고한 모성의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표현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거의 처녀의 모습으로 재현시키고 있다. 축 늘어진 시신을 안고 예수를 바라보는 마리아의 표정은 영원한 모성의 표상처럼 느껴진다. 머리를 주름진 천으로 두르고 부드러운 치맛자락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여인의 숨결이 마치 살아서 전해지는 것 같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영묘 중앙에 있는 쇠사슬의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내려온 모세가 우상숭배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분노에 찬 눈으로 지켜보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13세기 아르놀로 다 캄비오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옥좌에 앉아 있는 베드로의 청동상들을 직접 볼 수 있다.
성당 천장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화려한 색조의 돔을 받치는 각주는 베르니니에 의해 만들어진 네 분의 성인들이 벽감 안에 있다. 대성당의 방문을 마치려면 안토니오 델 뽈라이올로의 걸작인 '식스투스 4세의 묘'와 도나텔로의 '치보리오(성채용 제단) 등의 귀중한 작품들이 있는 성구실과 베드로 유물전시관을 돌아 볼 필요가 있다. 또한 돔을 받치는 각주 옆으로 입구가 있는 바티칸 지하 동굴에는 콘스탄티누스 시대의 옛 성당의 잔재가 남아 있으며 역대 여러 교황들의 무덤을 볼 수 있다.

장엄 화려한 대리석 건축물과 세기적인 걸작 조각상들을 바라보며 성 베드로 대성당 건립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교황청이 면죄부를 발행함으로써 촉발된 종교개혁의 진원지를 실감할 수 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신구교의 갈등의 진원지인 역사적 사건들이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는 성당 건축이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종교도 돈의 위력을 비켜갈 수 없었던 것 같다.

장대하고 화려한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는 데 가장 어려운 문제가 돈이었다. 로마제국의 잔해에서 거리낌 없이 재료를 갖다 쓸 수 있었지만 그것도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화가나 건축가들을 비롯하여 석수, 목수, 미장이들과 채석공들에게 지급하는 자금이 턱없이 모자랐다. 돈이 지불되지 않는다면 당장 가족들이 굶주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당대의 가톨릭 신앙에는 죄지은 자가 죽어서 가는 곳이 세 곳이 있었다. 착한 자는 천국으로 가고 사악한 자는 지옥으로 가며 아기들이나 일생을 통해 약간의 죄를 짓고 살았거나 회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연옥으로 가서 깊은 신앙과 간절한 기도를 거쳐 회개를 한 후에 천국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천국으로 가는 또 다른 길이 있었다. 기도는 시간이 걸렸고 중세 시대에도 시간은 돈이었다. 돈은 교회로부터 면죄부(indulgence)를 살 수 있게 해 주었다. 'indulgence'는 탐닉, 방종, 관용, 사면과 같은 의미로 종교적으로 존중할 만큼 좋은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개념이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성 베드로 성당의 재건에 전력을 다했지만 자금부족으로 진척이 부진했다. 교황은 가능한 좋은 의미에서 면죄부 판매에 나섰고 도미니크 수도회의 사제 텍셀이 앞장서서 면죄부 판매를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반면에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 몸담고 있던 마틴 루터는 아흔 다섯 가지의 이유를 들고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을 제기하여 결국 교회를 신구교로 갈라서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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