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문화 권력자'와 지방권력의 결탁
소수의 '문화 권력자'와 지방권력의 결탁
  • 한인섭 기자
  • 승인 2009.03.15 2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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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한인섭 정치부장

충북도는 '오선준씨 석사학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지난 13일 도립예술단 지휘자 위촉을 강행했다. 오씨와 공모·선정 책임자였던 문화예술과장이 처남·매부 관계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 도민들에게 오해를 불러온 점에 대해서는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언론을 통해 제기된 문제점을 확인했으나 중요한 하자는 없었다는 게 최종 입장이었다.

이번 파문은 1차적으로 지휘자 선정의 공정성, 적정성 문제지만, 애초에 단초를 제공한 것이나, 사후검증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의 핵심은 정우택 지사의 인사운영 스타일이다. "내가 쓰고 싶은 사람 쓰겠다는데 무슨 소리냐"는 식의 아집과 독선이 처음부터 결론을 내기까지 일관됐다는 점이다.

도지사 마인드가 그렇고, 방향이 결정됐던 일이라 대처하는 참모들 눈 역시 '외눈박이'였던 게 아닌가 싶다. 사후검증 과정에서 이들은 정해진 결론을 만들어 내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듯했다. 오 지휘자와 처남·매부관계라는 사실이 드러나 애초부터 공모·심사 과정에서 제척하는 것이 옳았다는 질타를 받았던 문화예술과장은 직접 나서 학위 검증까지 맡았다. 심사위원 등 음대교수들에게 전화를 걸어 오씨의 학위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물었다. 이미 인척관계가 드러난 마당에 웬만한 이들은 쉽게 'NO'라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교수는 'NO'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는 따지듯 '왜 인정 못하냐'는 식으로 결론을 유도했다. 결국 이 교수는 "들러리 섰다는 생각에 불쾌하고, 괴로웠는데 '학위인정 유도 전화'까지 받아 참을 수 없었다"며 "오씨의 불가리아 학위는 '일촌(一寸)'의 가치도 없고, 사실상 사전담합 행위가 있었다"고 실토하기에 이르렀다. 일이 어떤 성격을 지니는지, 상대방이나 일반인들이 어떤 시각을 가질지에 대한 성찰은 조금도 없었다. '도덕 불감증'이라는 말이 제격인 셈이다.

학위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오씨는 소피아국립음악원(판초 블라디게로브 아카데미)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현지 체류기간은 20여일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나 상식을 무참히 깼다. 3학기는 국내에서 레슨을 받았다지만, 법적 근거도 없었다. 대학 분교나 분원이려니 했지만, 개인 초청에 빌린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다는 주선자의 답변은 또 한 번 상식을 깼다. 오씨가 연락처를 알려준 같은과정 이수자들 역시 정식학위로 인정할 수 있느냐에 대해선 '글쎄요'라는 취지의 답변을 했던 점은 이 학위의 성격을 판단할 수 있는 단면이었다. 학위에 대한 평가 역시 관건이었다. 하지만 최종학교졸업 증명서라고 받아 놓은 서류에 대해 도 관계자는 물론 오씨조차 성격을 명확히 답변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기가 찰 노릇 아닌가.

사람을 미리 정해놓고, 절차를 진행한 결과였다. 1차에서 뽑는다면 분명 말이 나올 듯 싶자 오씨의 지원서류는 반려됐고, 지원자 14명 모두 탈락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론을 내야했던 2차 공모는 '상근'규정을 둬 음대교수 진입을 막았고, 국장급 공무원 면접 20%라는 '안전장치'까지 뒀던 것 아닌가. 도민들과 지역 예술인들에게 기대감을 안겼던 오케스트라 창단은 이렇듯 몇몇 인사들의 '잔치'로 전락했다. 소수 '문화 권력자'와 지방권력의 서툰 결탁과 비호를 보여준 사례인 셈이다.

그래서 상당수 음악인들은 이번 일의 중심에 정우택 지사가 있고, 사적인 영역이 아닌 150만의 인격권·명예권을 대표할 '충북도'라는 이름으로 벌어진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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