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이 주는 교훈
거울이 주는 교훈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3.09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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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이수한 <모충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거울 속을 뚫어지게 들여다 봅니다. 그리고 그 안의 또 다른 나에게 속삭여 봅니다. 인상 쓰지 말고 어디 한번 웃어 보아라 하고. 그런데 아무리 웃어 보라고 사정을 해도 거울 속의 또 다른 나는 웃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한 말을 다시금 되돌려 줍니다. 그러지 말고 네가 먼저 웃어 보라 하고. 이렇게 입씨름을 하다 그냥 먼저 피식 웃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자 거울 속의 나 또한 그렇게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요즈음은 자주 거울을 들여다 봅니다. 신부도 거울을 보느냐고요 그럼 신부가 거울을 더 자주 보지 신랑이 더 자주 보겠습니까 거울을 보다보면 최근 몇 년 사이에 참 많이 늙어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내일모레면 나이가 오십이니 늙어 보이는 것도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동안이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 마음 또한 십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보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마 얼굴은 늙어가도 마음만은 아직 어리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언젠가 한 왕이 수백만개의 거울이 달린 큰 궁전을 지었습니다. 모든 벽이 다 거울로 된 아름다운 궁전이었습니다. 어느 날 개 한 마리가 우연히 그 궁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개는 거울에 비친 수백만 마리의 개들을 만나게 됩니다. 당연히 그 개는 자신이 위험에 처했다 생각하고 바짝 긴장을 합니다. 곧 이어 그 개는 짖어대기 시작했고 더불어 거울 속의 수백만 마리의 개들 역시 따라 짖기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개는 혼자 거기에 있었고 그곳에는 다른 개들이 아닌 거울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아무도 그와 싸우지 않았고 사실 거기에는 싸움할 누구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개는 아침에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오쇼 라즈니쉬의 '뱀에게 신발 신기기'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웃하여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 거울의 신비는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속담에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내가 웃으면 상대도 웃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곧잘 망각하고 살아갑니다. 내가 먼저 웃어주면 상대도 웃음으로 대해 줄 텐데 나는 웃어주지 않으면서 오히려 상대가 웃어주기를 바랍니다. 나는 남에게 봉사하지 않으면서 남은 나에게 봉사하기를 바라고, 나는 모든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 하면서도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복종하기를 바랍니다.

수백만개의 거울 앞에 서게 된 우화 속의 개와 같이 자신의 모습이 곧 이웃의 모습임을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짖어대기 시작하면 이웃들도 짖어대기 시작합니다. 내가 싸움을 시작하면 이웃들도 나에게 덤벼들기 시작합니다. 거울 속에 투영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짖어대고 짖어대다가 아무런 싸울 대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싸움에서 죽어간 어리석은 개의 이야기와 같이 서로를 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세상은 불행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어느 때보다 화합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힘없는 이들에게만 고통 분담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힘 있는 사람들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고통을 분담한다면 현재의 이 어려움은 오히려 복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 올 것입니다. 강한 내가 원하니 무조건 따르라는 강압적인 횡포가 아니라 약한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아량의 미덕이 더욱 절실한 시기가 아닌지 또한 생각해 봅니다. 내가 변해야 상대가 변한다는 평범한 진리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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