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추기경과 추모공원
김 추기경과 추모공원
  • 안병권 기자
  • 승인 2009.02.24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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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안병권 부국장 <당진>

40여만명이 조문해 국민장이라 불렸던 김수환 추기경 선종(善終) 이후 추모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한국 천주교는 물론 로마 교황청까지도 놀라게 한 추모 열기는 종교와 이념 구별없이 한국사회 전반에 들불처럼 번져 이른바 '김수환 추기경 신드롬'으로까지 불려진다.

우리는 지금 존경할 만한 지도자가 없는 시기에 살고 있고, 그에 따른 정신적 공백을 늘 실감해 왔다. 그만큼 큰 어른이 적었으며, 사회 구심점이 없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 왔다.

생전에 국민의 존경을 받던 김 추기경은 선종 이후 온 국민을 하나로 만드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정파, 이념, 지역, 종교, 빈부로 나눠 분열과 대립 갈등으로 점철돼 있던 우리 사회의 저변에 통합과 사랑에 대한 갈구가 잠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추기경 선종을 계기로 다시 한 번 그의 행적을 되돌아보면서 감동하며 그 공백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김 추기경의 삶과 철학은 확고했다.

더 가난해야 했고, 더 사랑해야 했다.

마지막 순간에도 "사랑하고 사랑하라"며 사랑과 화해를 주문했다. 분열과 갈등에 화해의 다리를 놓아주고 화합과 평화를 추구해 벽을 허문 사회통합의 리더십이 죽어서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는 종교를 초월해 존경 받았던 거목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삶과 정신의 지도자로서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행복하고 편안한 사회를 추구했으며, 또한 사랑과 화해의 바탕 아래 도덕적 가치가 우선이라는 소신을 일관되게 지켜왔다.

김 추기경의 추모 열기가 식을 줄 모르는 가운데 경북 군위군이 3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추모공원을 조성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추모 미사가 열린 지난 22일 군위군은 33만㎡(10만여평) 규모로 김수환 추기경 추모공원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힌 것. 추모공원 예정지인 군위읍 용대리는 김 추기경이 태어난 곳이 아니라 4살부터 초등학교까지 살았던 집이 남아 있다. 군위군은 김 추기경 선종 전부터 이곳에 추모공원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고, 앞으로 5년간 동상, 추모비, 성모동상 등을 세우기로 했다.

군위군은 과다 예산의 문제점을 의식한 듯 진입로 등에 적지않은 예산이 투입된다고 밝히고 있으나, 신자, 네티즌 등의 반응은 따갑다. 군위군의 추모사업이 전해지자 천주교 신자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김 추기경의 검소했던 삶의 의미를 오히려 퇴색시킬 수 있다며 비판적인 반응이 절대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대교구는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소박한 추모방식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문제는 김수환 추기경이 이런 추모공원 조성 계획을 과연 원하고 있었느냐다.

안구까지 기증하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등 무소유로 살아온 검소한 성직자로서 300억이란 거금을 들여 자신을 위한 공원을 세운다고 하면 그리 반길 일은 아닌 듯싶다.

아직 결정된 사안이 아닌 만큼 지금이라도 계획 자체를 철회하고 어려운 이웃 등 복지에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나라 경제도 어려운 마당에 국운에 보탬이 되는 사업을 추진하는 게 마땅하다.

이런 성역화 사업은 김 추기경이 바라는 게 아니다. 종교 지도자를 기린다는 취지 아래 지자체 홍보를 위한 발상이라고 보기엔 명분도 실리도 그다지 없어 보인다.

온 국민의 신망을 받는 추기경의 이름으로 잡음을 일으키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평생을 사랑과 희생의 정신으로 낮은 데로 임한 삶에서 해답을 찾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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