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불신시대
의사 불신시대
  • 문종극 기자
  • 승인 2009.02.19 2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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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문종극 편집국장

몇년 전 한 후배로부터 아찔함이 전해지는 얘기를 들었다. 자신의 처가 지역의 한 종합병원을 찾아 검진을 받았는데 담당의사로부터 자궁암이라는 진단과 함께 급히 수술을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하늘이 꺼지는 것 같은 절망감에 빠졌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해야한다는 다급함이 있었지만 이 후배는 좀 더 큰 병원을 찾아 다시 한 번 검진을 받고 싶어 지인의 소개를 통해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는 것.

결과는 자궁암도 아닌데다가 수술없이 간단하게 처리하면 되는 것이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면서 신뢰할 수 없는 진단을 내린 의사에 대한 비난으로 입에 거품을 물었다. 몇년이 흐른 지금도 그 후배의 처는 아주 건강하다.

의사들에 대한 불신풍조가 최근 들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병원 경영진의 수지타산 잇속에 상당수의 의사들이 자의든 타의든 동조하면서 이같은 풍조가 심화되는 것 같다. 물론 오늘날에도 '의사의 아버지'로 존경받고 있는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의 의사윤리를 따르고 지키면서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이 대다수다. 그러나 인술보다는 상술에 편승하는 의사들이 속출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의사 불신의 본류인 것이다. 혹자들은 병원이 장사를 한다고 비난의 소리를 내뱉는다. 의사들에 대한 불신의 소리인 것이다.

이 시대의 의사들에게 묻고 싶다. 환자를 상대로 불필요한 수술을 유도한 적은 없는지, 당일 진료로 충분한 것을 서너 번 내원하도록 한 적은 없는지, 약을 처방하면서 적정량을 초과해 처방한 적은 없는지, 해당 과목 진료로 충분한 것을 다른 과목의 진료를 유도한 적은 없는지.

이같은 물음에 단 한 개라도 그렇게 한 적이 있다면 그 의사는 인술보다는 상술에 젖은 의사다. 이는 의과대학을 나서는 졸업식장에서 의사 윤리를 지키겠다고 맹세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정면으로 부인한 것이기도 하다.

사회에 만연돼 있는 불신풍조가 인명을 다루는 인술에까지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바닥을 치고 상승곡선을 그릴 줄 모르는 침체된 경기 속의 환자들이 시간적·경제적인 고통을 속절없이 겪고 있다.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에 대부분의 환자들이 거역하지 못한다는 정서는 그 진단이 상술이라고 해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의사에 대한 불신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닌 듯하다.

1950년대 중반까지 주로 단편을 써왔던 소설가 박경리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단편소설 '불신시대'에도 의사에 대한 불신이 그려진다. 6·26전쟁 중에 남편과 사별한 주인공 진영은 한 점 혈육인 아들 문수마저 엉터리 의사에게 뇌수술을 받다가 죽는데다 자신도 폐결핵을 앓게 된다. 그런 진영이 찾아간 병원은 주사약의 분량을 속이거나 건달이 의사노릇을 하는 등 한결같이 엉터리라는 대목이 나온다. 물론 픽션이지만 시대를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의사에 대한 불신의 역사가 짧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묵묵히 인술을 펼치는 대부분의 의사들까지도 불신을 받게 하는 일부 상술 의사들이 초심을 찾아야 한다. 사회 전반에 독버섯처럼 퍼져 있는 불신풍조를 해소하기 위해 한때 국가 차원에서도 캠페인을 벌이는 등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여전하다. 아니 더욱 깊어진다는 생각이다.

사회지도층이, 기득권층의 솔선이 관건이다. 이들이 양심적으로 살면 된다. 신뢰받을 수 있도록 행동하면 된다.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실천하고 기득권층은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면 신뢰사회 조성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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