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버'가 남긴 교훈
'후버'가 남긴 교훈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2.12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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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혁두/부국장(영동)

존 에드거 후버 미 FBI(연방수사국) 국장이 죽자 그의 집에 장의사보다 먼저 일단의 정장들이 들이닥쳤다. 서재의 책갈피까지 샅샅이 뒤지고 사라진 그들은 백악관 요원들로 추정되고 있다. 백악관, 더 정확히는 당시 대통령 닉슨이 후버의 죽음에 기민하게 대응한 이유는 간단하다. 후버가 확보해 자신을 압박했던 정보들이 유출되기 전에 찾아내 폐기하기 위해서였다.

후버는 8명의 대통령을 거치며 무려 48년간 연방수사국장 자리에 앉아 권력을 누렸다. 함께했던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그를 미워했지만 그의 전횡을 구경만 해야했다. 그의 정보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버의 경질을 추진했던 케네디 대통령도 그가 넌지시 내놓은 몇 장의 사진들을 보고 즉각 뜻을 접었다. 케네디의 문란했던 사생활로 미뤄 사진의 성격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가 물어다 준 정적들에 대한 저질스러운 정보에 맛을 들였다가 급기야는 대통령들 스스로가 사찰 대상이 됐고 코가 꿰여 휘둘리는 처지들이 된 것이다.

후버도 한편으로는 피해자 신세였다. '딜린저', '기관총 캘리' 등 신출귀몰했던 갱들을 집요하게 추적해 제거했던 그였지만 유독 '마피아'에게는 소극적이었다. 심지어는 마피아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그가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적나라한 사진을 마피아가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까지 장악했던 그가 깡패들에게 발목이 잡혀 시달린 것은 정보정치의 폐해를 상징하는 끔찍한 아이러니다.

요즘 정조가 정적 심환지에게 보냈던 서찰들이 발견돼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정조의 편지에는 읽고 난 후 폐기시킬 것을 당부하는 대목이 숱하게 등장한다. 서신이 누출됐을 때 자신이 입게 될 타격과 파장을 걱정했다는 얘기다. 심지어는 읽고 난 편지의 뒷처리를 본인이 직접 하는지 아들을 시키는지 묻고, 답장에 그 방법을 알려 달라고 청하기도 한다. 주고받은 편지의 내용이 새나간 것 같다는 추궁도 등장한다.

정조가 이렇게 노심초사하면서도 신하와 편지를 주고받는 모험을 죽기 직전까지 계속 이어간 이유가 무엇일까. 개혁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최대 정치파벌이자 반대세력인 노론벽파의 우두머리와 불가피하게 야합을 했거나, 당파를 아우르는 탕평책을 펴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 서찰에는 "요사이 소식은 어째서 알려주지 않는가"라며 심환지를 채근하는 문구가 나온다. 정조가 심환지를 통해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했고, 이를 통치에 활용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가능해지는 대목이다. 반대파벌의 총수로부터 얻은 정보는 통치기반이 취약했던 정조에게 요긴했을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심환지가 어찰을 폐기하라는 어명을 따르지 않고 차근차근 모아 간직했다는 것이다. 받은 날짜와 시간까지 꼬박꼬박 기록해 가면서 말이다. 정조는 서찰을 통해 심환지를 통제하며 정적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파악했지만, 심환지 역시 왕의 변심에 대비해 일전을 준비했던 것이 아닐까. 만일 정조가 요절하지 않았다면 어찰들은 지금이 아니라 당대에 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대사건이 됐을지도 모른다.

원세훈 국정원장 내정자가 국회 청문회에서 정치정보 수집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 정치사찰과 정보정치 부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그가 밝힌 '정치정보'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지만, 역사는 정치사찰이나 막후정치가 건전하거나 생산적인 결과로 귀착된 전례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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