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채화의 문학칼럼]아름다운 마무리
[한채화의 문학칼럼]아름다운 마무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2.05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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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화의 문학칼럼
한 채 화 <문학평론가>

우리는 추석이나 설이 되면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가 된다. 도로 위에서 몇 시간을 보내더라도 고향의 냄새를 향해서 기꺼이 길을 나선다. 마음은 이미 고향집에 당도하여 늘 무릎이 아픈 어머니를 만나고 있으니 길에 있어도 결코 지루하지 않다.

그러나 올해의 설은 좀 다른 듯하다. 세계의 경제가 어려움에 빠졌다는 소식과 함께 얄팍해진 월급봉투와 며칠 쉬라는 회사의 권유 아닌 권유가 예전의 설과는 가장 큰 차이다. 게다가 기온이 뚝 떨어져 콧물도 얼 판인데다가 눈마저 내렸으니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이쯤 되면 귀향길이 멀기만 했을 터이니 고향을 찾는 사람 못지않게 고향에 있는 사람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설날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모천회귀 말고도 한 해를 보내는 날인 동시에 새해를 맞는 날이기도 하다. 즉 반성과 새로운 다짐의 날이 되는 셈이다. 물론 지나간 시간에 매여서는 안 되며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기꺼이 작별해야 한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여야 한다.

겨울방학에 들기 전 한 권의 책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 책이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문학의 숲, 2008년 11월)이다. 교편을 잡은 사람에게 방학이란 깊이깊이 바다 밑에 잠기는 때이니, 잠겨서 읽기에 참으로 좋은 책이라 생각했다. 법정 스님의 글은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데 나 역시 그 독자의 한 사람이기에 선지식(先知識)과 함께 아름다운 마무리는 어떤 것일까 하는 기대를 갖고 책을 펼치게 되었다. 차례대로 읽다가 '아름다운 마무리'에 가서 절로 멈칫거리며 여러 번을 읽게 되었다. 글에 읽히지 않고 글의 내용을 나의 삶으로 잇기 위함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길의 도중에서 잃어버린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하고 물으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자각하는 일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진정한 내려놓음에서 완성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심각함과 복잡한 생각을 버리고 천진과 순수로 돌아가 존재의 기쁨을 누린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과거나 미래의 어느 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순간임을 아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와 이해와 자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새롭게 일깨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궁극적으로 내가 기댈 곳은 자연 뿐임을 아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개체인 나를 뛰어넘어 전체와 만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나를 얽어매고 있는 구속과 생각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차 한 잔을 팡에 두고 그 향기와 맛과 빛깔을 조용히 음미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스스로 가난과 간소함을 선택하여 자신을 정신적 궁핍으로부터 바로 세우고 소유의 비좁은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가려 불필요한 것과 거리를 둠으로써 하나만으로 만족할 줄 아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살아온 날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그 어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순례자나 여행자의 모습으로 산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없이 떨쳐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 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설을 보내고 이제는 각자의 일터에서 아름답게 시작했을 모든 가족을 위해 '아름다운 마무리'를 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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