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언어
전쟁과 언어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1.15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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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 규 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김현은 그의 소설 '칼의 노래'서문에서 탄식한다.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 나는 내 당대의 어떠한 가치도 긍정할 수 없었다. 제군들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있는가, 그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과 나는 영원한 남으로서 서로 복되다.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서 살 것이다."

소설 '칼의 노래'는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한다.

김현은 '버려진 섬'을 원균의 함대가 칠천량에서 대패해 조선 수군은 전멸하고 사람들은 다 도망가 빈 섬을 의미한 것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당초 '꽃은 피었다'에서 '꽃이 피었다'로 주격조사 하나를 바꾸는 데 며칠을 고민 고민 했노라고 토로한다. 김현은 그의 글 '회상'에서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이며,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섞어 넣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라는 것이다. 전쟁을 소재로 하는 소설을 쓰면서 이처럼 단어 하나에도 세심한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힘이다. 아니 그보다는 전쟁이 가져다주는 상흔이 너무도 처절한데서 비롯되는 일종의 냉철한 거리두기가 아닐까 싶다.

주지하다시피 '칼의 노래'는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근간으로 지어진 소설이다. 침략전쟁의 와중에서 인간 이순신의 번뇌와 고민을 최대한 객관적 시각에서 접근했대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전쟁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 이건 참으로 난감하고도 어려운 이야기다.

엄청난 숫자의 민간인이 희생되고 있는 가자지구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면서 이를 어찌 객관화할 수 있겠는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그리고 하마스와 유태인의 영원한 적대적 관계에 숨어있는 잠재태가 로켓공격과 대규모 지상군 공습으로 이어지는 전쟁으로의 발현태로서 꿈틀거릴 수밖에 없는 오랜 역사적 점철은 기막히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고,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생명들이 유린되고 있는데 역사적 질곡과 객관적 관점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문제는 전쟁에 대한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언론과 구호에 대한 손길마저 거부하는 폐쇄에 있다.

그리고 민간인을 방패로 삼는다거나, 지난 8년간 하마스에 의해 계속된 (이스라엘에 대한)로켓공격 형식의 테러 행위에 대한 대응이라는 끝 모를 대립구도에 있다.

영문도 모른채 죽거나 부상으로 신음하면서 고통에 처해 있는 어린이들은 이스마엘 하니야 하마스 총리가 말하는 "진실과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신의 성서다"에서의 신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게다가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접경지에 모여 마치 컴퓨터 게임을 즐기듯 망원경으로 자국의 공격 상황을 즐기는 잔혹함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그 이름값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이쯤에 이르면 직접 젖을 물림으로써 소통하고 세대를 이어가는 포유류로서의 인간의 한계가 더욱 모호할진대 전쟁에서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는 어떤 시도도 무색할 뿐이다.

이제 부시의 시대는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서고 있다.

그리고 소설에서의 주격조사 은, 는, 이, 가의 선택에 갈등하는 작가의 배려는 생명 앞에서 차라리 무기력하다. 사람이 살고 죽는 일 그 위태로운 전쟁의 비극에서 언어와 문자는 차마 궁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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