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슬프게 했던 아이들, 그러나…
나를 슬프게 했던 아이들, 그러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1.1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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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발언대
신윤영 진천 한천초

초등학교 시절부터 청주에서 생활해온 나에게 첫 발령지인 타지에서의 생활은 흥분과 기대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너무나 많이 배려해주신 교감선생님은 3학년 담임과 지지부진한 일을 맡겨 주셨다. 3월 2일 첫날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나에게 처음 눈에 띈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김경민(가명)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정상이 아닌 아이. 3학년답지 않게 큰 키와 큰 덩치, 단추 구멍만한 눈과 항상 벌리고 있는 입. 3학년이지만 글을 읽고 쓰기는커녕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 아이 경민이는 나를 많이 슬프게 했다. 복도 앞에 경민이가 본 변을 치우면서 내 품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실수할 모습을 걱정하며 눈물을 흘렸다.

아무도 없는 남의 교실의 창문을 넘어가 남의 주머니를 뒤지는 경민이를 보며 제대로 된 도덕관념을 가르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눈물을 흘렸다. 신체검사 날 시력검사를 할 때 끝이 붉은 막대기 끝이 나비를 가리켜도, 새를 가리켜도 모두 어눌한 발음으로 '밥'이라고만 할 때도 안쓰러움에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이 자기를 조금이라도 해롭게 한다고 생각할 때마다 '어~억'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며 자기의 두 팔을 엇갈려 수갑을 채우는 시늉을 할 때도 눈물을 흘렸다. 경찰이셨던 아버지가 아마 집에서 누누이 말씀하셨으리라. 너에게 잘못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이 아버지가 수갑을 채우겠노라고.

급식소에만 가면 마냥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웃음에도 눈물을 흘렸다. 내가 노력해도 도와 줄 수 없는 일들, 경민이가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나를 슬프게 했다.

가을 소풍을 가는 날이었다. 경민이는 소풍 때마다 어머니가 경민이를 데리고 같이 소풍을 가셨다고 한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몸이 아프셔서 같이 소풍을 가지 못하니, 경민이도 보내지 않겠다고 하셨다. 우암어린이회관의 수많은 전시물과 놀이기구들을 탈 수 있는데 경민이가 가지 못한다니 서운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는 담임인 내가 돌보겠다고 약속하고 경민이를 데리고 청주로 향하는 버스에 나란히 앉았다. 마냥 좋아하는 경민이를 보면서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나의 기분도 가벼워졌다.

처음에는 경민이를 잘 돌봐주는 남자 친구들을 불러 경민이를 잘 데리고 다니라고 부탁했지만 간절히 아주 간절히 자유롭기를 바라는 그 아이들의 눈동자를 보고 내가 데리고 다니기로 했다.

경민이는 계속 탄성을 지르며 그 당시 작은 키와 마른 체구의 나를 막 끌고 다녔다. 다른 학교에서도 많은 아이들이 소풍을 왔으므로 난 경민이의 손을 놓으면 경민이를 잃어버릴까 봐 있는 힘껏 경민이의 손을 잡고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경민이와 함께 다니면서 경민이를 쳐다보는 수많은 눈동자들, 간혹 손가락질을 하며 가리키는 아이들을 보며 난 다시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경민이도 너희들과 똑같은 초등학생이라고, 단지 아주 조금만 다를 뿐이라고 그 아이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경민이 잘못도 아니고 경민이 부모님 잘못도 아니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경민이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바로 놀이기구를 타는 곳이었다. 입을 헤 벌리며 단추 구멍만한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이기구들을 타 보고 싶었다. 평소에 무서워서 놀이기구가 질색이던 나는 큰 용기를 내어 경민이와 우주 비행기를 탔다.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우주 비행기 안에서 난 무서워 손잡이를 꼭 잡았지만 경민이는 내 옆에서 환호성을 멈추지 않았다. 밤파카를 타면서 이리 저리 아이들의 차와 부딪치면서도 그 행복한 탄성은 멈추지 않았다. 아마 한번도 이런 유원지에 와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한번도 이런 놀이기구를 탄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날 경민이의 표정은 내가 본 가장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행복한 모습이었다. 내가 학교를 떠나온 후 경민이를 헌신적으로 돌봐주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린 경민이를 두고 어떻게 눈을 감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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