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빈 검사
임수빈 검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1.05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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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서울 중앙지검 임수빈 부장검사가 며칠동안 네티즌들의 타깃이 됐다. 이번엔 비난 보다는 긍정의 표적이 된 것이다. 일부는 영화 '공공의 적'에 나오는 강철중과 비교하며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MBC의 PD수첩 수사를 담당했던 임 검사의 갑작스러운 사의표명은 사안의 성격상 당연히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그가 천직으로 삼았던 검사 직을 그만두겠다는 이유는 아직 정확지 않다. 다만 이미 보도된 대로 PD 수첩에 대한 수사방향을 놓고 검찰 지휘부와 갈등을 빚었고 본인은 명예훼손으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정부에서 그 정도의 의욕을 갖고 밀어붙였다면 PD 수첩 수사는 이미 결론이 났거나 가시적인 윤곽이 드러났어야 정상이다. 광우병 보도가 과연 편파적인 명예훼손이었는지는 국민들이 더 궁금해 한다.

꽤 오래된 일이지만 임수빈 검사와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하나 있다. 93년 쯤인가 그가 청주지검 충주지청에서 평검사로 재직할 때다. 한번은 그가 의욕적인 기획수사를 벌였는데 공교롭게도 상대가 언론계 선배였다. 그 선배는 결국 불미스러운 일로 구속까지 당했고, 당시 취재하는 출입기자 입장에선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평소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눴던 터라 수사가 마무리된 후 지금은 CJB 청주방송에 근무하는 동료와 함께 임 검사를사석에서마주했다.당연히 우리는푸념부터 던졌고 꼭 그렇게 언론에 상처를 남겨야 했냐고 따져 물었다. 임 검사의 말은 분명했다. 언론 본연의 실체는 자신도 철저하게 존중하지만 언론을 빙자한 일탈엔 눈감을 수 없다는 요지였다.밤 늦게까지 계속된 자리의 끝은 결국 과음이었다.

서로 임지를 떠난 후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살았다가 이번 사의표명 파문을 접하고선 안타까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넉넉한풍채에확실한주관, 이 정도면 검찰에 오래 남아 더 큰 일을 해야 한다는 사견 때문이다.

그의 언론과의 인연, 아니 악연은 충주에서 시작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만약 임 검사가 PD 수첩을 처벌하기 어렵다는 소신을 가졌다면 그 인식의 배경은 얼마든지 예측가능하다. 공적 영역에 대한 언론의 비판 기능을 고민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에 대해 심각하게 고뇌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화두가 던져질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인용되는 것이 있다. 64년 미 연방대법원이 내린 이른바 '설리번 판결'이다. 핵심은 이렇다. 공직자가 공무와 관련된 공적 영역의 일에 대해 명예훼손에 따른 배상을 구하려면 언론사가 허위임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보도했거나 그 진위를 무모할 정도로 왜곡 편파보도했음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심지어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려면 어느 정도까지는 사실관계가 잘못되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설리번 판결 이후 미국에서 공직기관이나 공직자가 언론을 상대로 승소한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한다. 명예훼손의 잣대를 놓고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엄격하게 구분해 언론의 권력감시를 확실하고도 포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힘은 바로 이런 데서 나오고 있다.

그 사례의 하나로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스캔들 보도를 들 수 있다. 당시 언론들은 클린턴의 성기가 옆으로 구부러졌느니 어쩌니 하며 인신공격성 추측기사를 서슴없이 남발했다. 하지만 이런 보도가 명예훼손 송사에 휘말렸다는 소식은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어떠했을까. 언감생심, 현직 대통령에 대한 이런 기사는 당연히 꿈도 못 꾼다.

다시 임수빈 검사를 만난다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15년 전에 고민한 언론 본연의 실체는 무엇이냐고, 그것을 끝까지 지켜줄 생각은 없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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