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 자들의 도시
눈 먼 자들의 도시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2.18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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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화의 문학칼럼
한 채 화 <문학평론가>

가설극장이 서고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면 조용하던 시골동네는 갑자기 흥이 나기 시작한다. 학생들은 들떠서 공부가 파하는 대로 가설극장 주변으로 몰려들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기대감을 안고 몰려든다. 천막으로 극장의 안과 밖을 구분해 놓아 영화의 소리가 밖으로 들리니 보고 싶은 마음으로 애가 탄다.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서 영화관에 들어가면 오래 된 필름인지라 비가 주루룩주루룩 내리는 화면이지만 그래도 감지덕지다.

고등학생 무렵엔 입술을 빨갛게 칠한 여자 배우의 그림과 코트의 깃을 세운 남자 배우가 멋있어 보였지만 영화를 구경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가끔 학교에서 시험이 끝났을 때에 단체로 입장을 허락한 영화는 대개가 전쟁과 관련한 내용들이었다. 관심이 높은 남녀의 사랑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영화들이었다. 이런 사정이니 영화를 본격 접하게 된 것은 대학 다닐 때가 고작이었다.

며칠 전에 아내와 함께 영화관에 갔다. 한곳에 열 개가 넘는 상영관을 갖추고 있으니 원하는 영화를 원하는 시간에 관람할 수 있다. 즐거운 선택의 고민이 있다. 학생들도 비록 연령의 제한은 있지만 얼마든지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의자는 안락하고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아서 흥미롭다. 그래서 가끔이라도 영화를 감상하고 나면 긴장감이 해소되고 기분이 전환되어 좋다. 세상 참 많이도 변했다.

그날 감상한 영화는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을 영화로 각색한 '눈 먼 자들의 도시'였다. 1922년 포르투갈에서 태어난 사라마구는 50세 중반이 되어서야 문학에 뛰어들어 1982년에는 '수도원의 비망록'을 발표하면서 유럽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이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평범한 어느 날 오후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며 한 남자가 차도 한가운데에서 차를 세운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이후 그를 집에 데려다 준 남자도, 그를 간호한 아내도, 남자가 치료받기 위해 들른 병원의 환자들도, 그를 치료한 안과 의사도 모두 눈이 멀어버린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앞이 보이지 않는 이상 현상. 눈 먼 자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정부는 그들을 병원에 격리 수용하고 세상의 앞 못 보는 자들이 모두 한 장소에 모인다. 그리고 남편을 지키기 위해 눈 먼 자처럼 행동하는 앞을 볼 수 있는 한 여인이 있다.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병동에서 오직 그녀만이 충격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녀만이 눈을 뜬 자이다. 눈을 떴다는 것은 깨달음의 상징이다.

그녀가 목격한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세 개의 병동에서 대표를 선출하였지만 힘을 가진 자가 세 개의 병동을 자기의 수하에 넣는 장면을 먼저 목격하게 된다. 권력자는 힘의 상징인 총을 가지고 있다. 물론 총을 가진 자에게 빌붙어 지내려는 자들도 생겨난다.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정치적인 욕망의 표현이다.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된 그자들은 무료인 보급품을 나눠주면서 값으로 돈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각 병동에서는 돈과 귀중품을 모아서 보급품을 수령하게 된다. 경제적인 욕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밀폐된 공간에 있는 자들의 돈이라는 것은 금방 한계에 이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권력자들은 돈을 대신하여 각 병동의 여성들에게 성을 요구하게 된다.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의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 보여 준다.

오늘날의 우리는 물론 눈을 뜬 채로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우리의 욕망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눈을 뜬 자들은 무엇을 깨닫는가라고 묻는 질문은 우리의 가슴으로 들어와 깨달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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