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사는 지혜
느리게 사는 지혜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2.09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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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신 종 석 <시인>

어느 날 보니 나는 늘 뛰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잠시도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루하루를 종종 거리며 허둥댔다. 꽃이 피고 지는 것도, 바람이 머물다 가며 들려주는 이야기도, 들을 여유가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일들이 빨리 진행되지 않으면 가슴이 먼저 두근거렸다. 화가 나기도 하고 조급증이 일었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들뜬 하루를 시작하고 허둥거리며 하루를 끝냈다. 아이들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소리 먼저 높아졌다. 왜 이러지 싶어 뒤돌아보니 올해도 몇 걸음 남지 않았다.

내가 정신없이 뛰는 사이 들꽃은 피었다 지고 들판은 황량하다. 숲은 느린 몸짓으로 계절에 따라 다른 모습이다. 강물은 서두르지 않고 늘 같은 걸음으로 흐르고 있다. 노을은 하루를 느리게 걸어온 사람에게만 "참 잘했어요." 라고 붉은 도장을 찍고 있었다. 나만 바쁘게 뛰고 있었다. 가속도가 붙은 뜀박질에서 벗어나고 싶다. 앞만 보던 시선을 함께 걷는 사람과 뒤에 처진 사람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고 싶다.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며 느린 걸음으로 걷고 싶다.

"느리게 살자"가 슬로시티(slow city) 운동이다. 이 운동은 1999년 이탈리아의 4개 도시가 고속사회의 피난처를 자처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빠르게 발전하는 현대사회의 병폐와 지나친 물질의 풍요에 따른 정신적 빈곤을 인식한 시골마을 시장의 생각이었다. 그의 이름은 파올로사투르니니, 그는 소음과 교통량을 줄이고, 녹지대와 보행자 전용 구역을 늘리며, 지역의 전통 문화와 음식을 보존하자는 취지로 이 운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이 운동이 처음 시작된 이탈리아 브라시는 인구 3만 명이 채 안 되는 소도시로 상점들은 오후 3시가 넘어야 문을 연단다. 마을에는 자동차, 편의점, 네온사인도 없다고 한다. 그야말로 시대를 거꾸로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한다. 그렇지만 불편해 하지 않는다고 한다. 꿈같은 이야기며 우리와 먼 거리의 남의 나라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생활방식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살아가고 있는 곳, 슬로시티가 있다고 한다.

전남 완도군 청산도, 신안군 증도, 담양군 삼지천마을, 장흥 반월마을 등 4곳이 '슬로시티'로 지정됐으며, 아시아에서는 처음이라고 한다. 지금도 소를 이용해 논밭을 갈고 다랑논에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돌담, 해녀, 초분 등의 전통문화와 환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단다. 갯벌에 살고 있는 작은 생물을 존중하며 소금밭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으며. 돌담을 사이에 두고 오순도순 정을 나누는 마을이란다. 급격한 사회 변동과 도시화 가운데서 전통적 삶의 방식과 공동체 정신을 아름답게 지켜내고 있는 곳으로 인정받아 슬로시티로 선정되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더군다나 물질문명의 편리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그 편리함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이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써서 쓰레기배출량을 줄이고, 자가용 이용을 줄이고, 욕심마저 버린다면 더 많은 행복을 느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에 누리던 현대사회의 편리함을 하나 둘 버리다보면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것으로도 만족할 줄 아는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정신이 필요할 때다.

지나친 물질의 풍요는 정신을 빈곤하게 만든다고 하지 않은가 한 템포 느리게 생각하면서 느긋한 마음으로 자연과 함께 순리대로 살아가는 연습이 필요할 때다.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해가 바뀌기 전에 담양 삼지천마을 돌담길을 느린 걸음으로 걸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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