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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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2.0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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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화의 문학칼럼
한 채 화 <문학평론가>

사람은 태초에 어떤 기호를 사용하여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했을까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또 어떤 매체를 사용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물론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들처럼 조직적인 기호를 갖고 있지는 않았을 터이고, 자의적(恣意的)이지도 않았을 것은 자명하다. 즉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체계적이지 않은 기호들이었을 것이고 전달 매체도 극히 제한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오늘날의 전달 방식은 매우 다양하고 그 전달 매체 역시 다양하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조직적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말소리에 의한 음성언어가 그렇고 글자에 의한 문자언어도 예외가 아니다. 가령 '바다'라고 말한다면 출렁거리는 파도에서부터 여름철의 수많은 인파 그리고 영화처럼 애증이 교차되는 공간의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다. 그러나 '바다'가 그와는 다른 의미로 이해되기도 한다.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창작과 비평', 2008년 가을호, 통권141호)은 바다에 대한 일반적인 의미를 넘어서서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이라는 제목을 보자. 이틀이라는 시간이 바닷가에 있는 그 집에서 일어났음을 상상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물들이 바다에는 왜 갔으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궁금증을 지우지 못한다. 더 나아가서는 바다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일까 궁금해진다.

먼저 바닷가 그 집으로 가고 있는 중심 인물인 이상만과 강혜주의 언행을 보면 욕설과 빈정거림 일색이다. 주지하는 바대로 욕설이란 강한 거부감의 다른 표현이다. 설령 욕설이나 빈정거림을 습관화하였다고 해도 언어가 곧 그 사람이라고 전제한다면 두 사람의 언동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강한 억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보다 집이 아담하다. 동백나무며 대문 앞에 꽃대를 올린 산나리도 졸라 예쁘다. 이런 집에서 한번 살아 봤으면. 뜬금없이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 씨발, 이래선 안 되는데. 휴가까지 와서 이게 뭔 쓸데없는 생각이람.(278쪽)

요즘 젊은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가 쉽게 눈으로 달려든다. 너무 일반화하여 욕설처럼 생각하지도 않는 말이긴 하나 '졸라'가 '예쁘다'에 대한 수식어로는 적절하지 않다. 이는 동백나무 산나리가 피어 있는 아담한 집에 대한 동경의 반어적 표현이며, 지극히 평범함에 대한 동경인 셈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현재 상만이는 결코 평범하지 못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빈정거리는 혜주 역시 비슷한 처지일 듯하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고 했고 욕설을 섞어서 아버지가 생각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 욕설 안에 있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내면에서 일어나는 강한 욕망과 이를 감추고 싶은 욕망 사이의 갈등이 욕설로 표현된 것이다. 따라서 상만이의 독백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증오심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을 묶고 돌아오는 길에는 욕설이나 빈정거림이 없다. 다시 말하면 갈등이 해소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길은 같은 길이지만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은 상반되며 그 사이에 바다가 있었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 '바다'는 용서와 화해의 공간 역할을 한 셈이다.

한 해를 마무리한다며 송년 모임이 잦은 12월. 겨울바다를 찾아 용서와 화해의 길을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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