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을 생각한다
지금, 북한을 생각한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2.01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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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얼마 뒤 노태우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다. 그가 서독의 콜 수상과 회담하면서 이런 말을 던졌다. "북한이 동독 같기만 하다면 우리의 남북관계도 정상화되고 통일도 쉽게 이루어질 텐데."

그런데 콜 수상의 반응은 노대통령뿐만 아니라 수행원들의 의표를 찔렀고 문제의 발언은 즉각 기사화 돼 한국 언론에 소개됐다. 콜의 대답은 이러했다. "북한이 동독 같기만을 요구하지 말고 남한이 서독같이 되려는 노력을 하시오."

당시 노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대해 파격이라고 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역사적인 '남북 기본합의서'를 체결한 데 이어 그 후속조치를 타진하는 등 전임자들과는 다른 진취적인 행보로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콜 수상을 만나 자기는 이 정도로 하는데 북한이 문제라면서 독일 통일을 이룩한 그에게 립서비스를 한 것인데 되레 보기 좋게 꾸짖음을 들은 것이다. 외교에서 이 정도의 썰렁한 뒤치기라면 당장 보따리를 싸고 비행기의 기수를 돌려야 정상이다.

한반도의 통일문제나 남북관계가 나오면 으레 인용되는 게 독일의 사례다. 그리고 왜 우리는 그들처럼 못하는가라는 자성론이 뒤따른다. 이에 대한 해답은 노태우와 콜이 주고받은 말에 분명하게 숨어 있다.

동서독은 남북한 기본합의서와 유사한 '동서독관계 기본 조약'을 이미 20년전인 1972년에 체결했다. 이후 양측은 관계 개선을 위해 그 조약을 성실히 이행했고, 결국 통일을 일궈냈다.

물론 그 과정에선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베를린 장벽을 넘는 동독인들의 서독행을 놓고 심각하게 대립했는가 하면 어느땐 교류 자체가 파국을 맞을 뻔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이를 극복하게 한 원력은 서로 신뢰를 잃지 않으려는 인내와 상대에 대한 포용이었다.

개성관광을 중단시킨 북한이 결국 어제 개성공단의 인력감축을 명했다. 입주업체들은 이러다간 완전 철수까지 가지 않겠냐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표현하면 김대중·노무현, 더 멀게는 노태우 시절부터 공들여 온 남북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진 꼴이다.

이명박 정부가 대북관계를 경색시킨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가 해 준 만큼 반대급부는커녕 오히려 건방지게 큰소리만 친다는 불신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갈 데까지 가보자는 기조가 여전히 대세를 이룬다.

때가 되면 먹고살기 힘든 북한이 제발로 머리 숙이고 들어 올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말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북한은 남한의 모든 국민들에게 '참 싸가지 없는 집단'으로 매도돼도 할 말이 없다. 적어도 서로 주고 받음을 원칙으로 하는 상호주의의 가장 기본에서 판단하면 그렇다.

그러나 여기에 맹점이 있다. 절대적인 궁핍국가 북한은 절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합리적인 잣대를 견지할 수 없다. 작은 조직이 큰 조직과 싸워서 살아 남으려면 때론 극약처방이 필요하듯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의 벼랑끝 전술이니 하는 것도 결국 배경은 이렇다. 앞으로도 북한은 끊임없이 생존을 위한 변신을 감행할 것이다.

남한의 입장에서야 금강산 관광도 확 풀고 이산가족 상봉도 왕창 했으면 하겠지만 북한은 이를 체제 붕괴의 단초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조금씩 열자며 지난 10여년 동안 공을 들였고 결국 통일 독일의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며칠전 모 TV의 시사프로에서 아주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북한 여성이 자전거 통행 문제로 소위 공안원과 다투는 모습인데 그 정도가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다. 대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공안원을 잡아 먹으려는 기세였다. 분명 북한도 변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남북교류 및 대화가 단절되면서 정작 우려되는 것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점차 주도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까지보다도 훨씬 더 큰 '퍼주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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