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교실에서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2.01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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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발언대
이 종 대 <진천고ㆍ시인>

씨앗 한 알 묻으며/잎을 본다/운동장 가득 채울 무성함/땅거죽 뚫고/돌멩이 깨뜨리며 올라오는/살아 있는 것들의 무서움/바람의 손아귀에도/짐승의발길질에도/기어코 땅의 기운 들어 펼치는 위대함/파란 소망 한 알 칠판에 묻으며/나는 보았다/하늘로 솟아오르는/시퍼런 눈빛/백묵 한 획에/돋아 오르는 눈부신 잎사귀 // -교실에서 전문-

이 시는 나의 첫 시집 '어머니의 새벽'에 실린 자작시다. 30년 가까운 교직생활을 되돌아보면 보람 있고 즐거운 추억은 주로 교실에서의 수업이 아니었나 싶다. 학생을 가르치면 대부분 선생님들은 '씨앗 한 알을 묻는' 심정으로 학생을 가르친다. 그 씨앗이 운동장을가득덮을 수 있는 커다란 나무로 자라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가 묻은 씨앗이 제대로 크려면 두꺼운 땅거죽을 뚫고 나와야 한다. 짓누르고 있는 돌멩이도 깨뜨려야 하고 심하게 부는 바람도 견뎌야 한다. 때로는 짐승의 험한 발길질도 피해야 하고 새의 날카로운 부리도 벗어나야 할 때도 있다. 선생님은 학생의 가슴에 묻은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기를 소망한다. 파란 소망을 칠판에 묻으며 진리를 갈망하며 번뜩이는 제자의 시퍼런 눈빛을 본다. 희망을 본다. 선생님은 백묵 한 획에 돋아 오르는 희망의 푸른 잎사귀를 보면서 수업에 열을 다하는 것이다.

매년 이맘때면 고3 교실은 참 분주하다. 입술이 타들어 가고 가슴이 조여드는 긴장감을 느낀다.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도 초긴장 상태에서 마지막 점검을 하는 고3 교실. 일찌감치 수시에 합격한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수시 2-2학기에 세 개, 네 개 심지어 열 개 이상의 대학에 원서를 접수시키는 학생들도 있다. 옆에서 바라보는 심정이 안타까운데 학생 본인의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어떠할까 수시 입시에서 대학을 선택하여 진로를 결정하려는 제자들을 보며 선생님은 그들의 선택이 진정 100% 정확하고 잘된 선택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적성과 취미와 소질도 고려하고 장래의 직업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이 되길 바란다. 불안하고 초조하여 혹시 적성에도 맞지 않고 소질도 취미도 없는데 우선 합격하고 보자는 급한 심정에서 지원하는 것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란다. 여러 군데 원서를 지원할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고선생님과 부모님,선배님들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 최종적으로 진로를 결정해야한다. 물론 이와 같은 바람은 수시입시뿐만 아니라 정시입시에도 마찬가지이다.학생들이 최우선으로 선택해야 할 기준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도록 진로를 선택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우선일 수도 있으나 긴 인생을 볼 때 대학의 학과 선택은 그 어떤 것보다 인생의 기로에서 중요한 것이다.

기쁨의 환호성이 터져나오기도 하고 수능을 앞둔 폭발 직전 같은 긴장감이 감돌기도 하는 것이 요즘 우리 제자들이 다니는 고3 교실의 풍경이다. 합격에 즐거워하는 친구를 축하해 주는 것도 잠시 상당수의 학생들은 몰려오는 피곤을 무릅쓰고 다시 칠판과 책을 번갈아 바라보며 단어를 외고 수학 문제 풀기를 거듭한다.

선생님들은 칠판에 묻은 소망의 씨앗이 거목으로 자라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오늘도 제자들의 밝은 장래를 기원한다. 10년 뒤, 20년, 30년 뒤 제자들이 이끌 우리 사회의 발전된 모습을 꿈꾸며 다시 분필을 잡는다.

나는 보았다/하늘로 솟아오르는/시퍼런 눈빛/백묵 한 획에/돋아 오르는 눈부신 잎사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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