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무너져 버린 삶의 질
태안, 무너져 버린 삶의 질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1.27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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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정의 소비자 살롱
유 현 정 <충북대 주거환경·소비자학과 교수>

초유의 기름유출사고인 허베이스피리트호 충돌사고가 발생한 지 어느새 1년이 다가오고 있다. 삶의 질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던 필자에게 태안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연구해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120만명의 자원봉사자가 다녀갔다는 태안.

사고의 피해규모만큼이나 태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해외토픽감으로 매일 뉴스를 장식했다. 사고 발생 후 8개월이 지나 태안을 찾았을 때 눈물겨운 지역 주민들의 땀과 노력으로 태안은 얼핏 2007년 12월 이전의 모습을 되찾은 듯 보였다. 그러나 그 안에 사람들은 없었다.

2007년 12월 7일 발생한 한순간의 사고는 태안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말았다. 생업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쳤고, 서로의 이익을 위해 처절한 아비규환의 장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어느새 이웃은 낯선 이름이 되어 버렸고, 누구 하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정서는 '불안'과 '분노'였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날 갑자기 밀어닥친 재난. 언제쯤 이 어둠의 터널이 끝나고 새로운 희망을 가져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

불과 7, 8개월 전의 행복했던 삶이 과연 내 것이었을까 생각될 정도로 이들의 정서는 피폐해 있었다. 방제 및 배상금 지급 과정에서의 매끄럽지 못한 행정처리,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이웃들과의 갈등으로 이들은 모두 화병 환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간혹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나아졌겠지…'하며 우리가 마음을 놓은 사이에도 이들은 삶과의 사투를 벌여오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돌아가고, 지역주민들 스스로가 방제작업을 떠맡게 되면서 본질을 흐리는 문제들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하는 둥 마는 둥 방제작업에 얼굴만 내밀면 수당을 준다는 것, 이런 저런 배상금으로 실제로는 제법 많은 금전적 이득을 얻었다는 것 등등등.

어쩌면 일부 맞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질은 무엇인가. 어쨌든 이들은 최악의 기름유출사고의 중심에 있는 피해자라는 점이다. 얼마가 걸릴지 모르는 오염된 환경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지금이라도 서둘러 정부가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지원프로그램을 통해 지역민 하나하나가 절실히 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지 않는다면 이들의 무너져 버린 삶의 질을 회복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되어버릴지 모른다. 서로의 입장과 이해가 다른 상황에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해법을 찾는 일은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 자체만으로도 주민들은 희망을 느낄 것이고, 살아가야 할 이유를 제공해 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찾지 못한 곳 그 속에서 우리는 차마 삶의 질을 논하기 어려웠다.

지속적인 관심과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삶의 질은 차후 다시 한 번 논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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